찬바람만 불면 혈액난… 중환자들 피마른다
입력 2013-10-22 18:16
대학생 이모(25·여)씨는 하루 한 차례 이상 대한적십자사 홈페이지에 방문해 ‘오늘의 혈액정보’를 보며 혈액보유량을 확인하고 있다. 오랜 기간 백혈병으로 투병 중인 이씨 어머니는 적어도 2주에 한 번 3팩(400㎖기준)씩 수혈을 받아야 하지만 혈액이 부족해 충분한 수혈을 받지 못할 때가 많았기 때문이다. 병원에 문의할 때마다 “동절기에는 헌혈자 수가 줄어 혈액 수급이 더 어려워진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겨울이 다가오면서 수혈이 필요한 중증 환자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겨울철에는 각종 사건·사고가 늘고 환자의 병세가 악화되는 경우도 많아 혈액 수요가 연중 어느 때보다 높다. 그러나 헌혈자 수는 급격히 줄어들어 혈액 수급이 불안정해진다.
대한적십자사는 지난해 동절기(1∼3월, 10∼12월)의 월별 혈액보유량이 평균 4.3일치였다고 22일 밝혔다. 혈액 수요를 불과 나흘 남짓 감당할 정도만 확보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4∼9월 평균 보유량 6.1일치보다 29% 감소한 수치다. 2010년 7.3일치였던 동절기 혈액보유량은 지난해 40% 이상 감소했다. 특히 지난해 1월의 혈액보유량은 2.9일치에 그쳤다. 지난해 동절기 헌혈자 수 역시 월평균 20만9372명을 기록, 하절기(21만2306명)보다 다소 줄었다.
이처럼 동절기 혈액 수급이 어려워진 것은 전체 헌혈자 중 10∼20대 비율이 지나치게 높기 때문이다. 지난해 16∼29세가 헌혈자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79.6%나 됐다. 일본은 16∼29세의 비중이 25.2%에 불과하다. 고교생·대학생이 다수인 이 연령대는 동절기가 되면 긴 겨울방학과 입시, 취업 준비 등으로 헌혈자가 급격히 줄어든다.
우리나라 헌혈자 중 젊은층 비율이 지나치게 높은 것은 헌혈 실적이 봉사활동 점수에 반영되기 때문이다. 2010년 7월부터 헌혈 1회를 봉사활동 4시간으로 환산하면서 대학입시와 취업에 봉사활동 시간이 필요한 10·20대가 전체 헌혈자 중 80% 가까이 차지하게 됐다. 대한적십자사 관계자는 “우리도 직장인을 포함한 전 연령대의 고른 헌혈이 필요하다”며 “특히 동절기에 ‘헌혈 송년회·신년회’ 등이 확산되길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잠자는’ 헌혈증이 늘고 있는 것도 문제로 꼽힌다. 헌혈증 환급 비율은 2009년 19.6%에서 2013년(7월 기준) 11.9%로 4년 사이 40% 가까이 줄어들었다. 이처럼 환급률이 줄어든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우선 2009년부터 중증질환자의 본인부담금이 10%에서 5%로 감소했다. 이에 따라 환자 본인이 부담해야 할 금액이 절반 수준으로 줄어 헌혈증을 찾는 사람이 줄어든 것이다.
또 개인 실손보험 가입자가 늘어난 것도 헌혈증 환급률을 낮췄다. 실손보험에 가입하면 수혈 받은 혈액 비용을 모두 지원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실손보험 가입자는 2008년도 939만명에서 지난해 2700만명으로 2.8배 이상 증가했다. 환급되는 헌혈증이 줄면서 헌혈증을 내고 돌려받은 환급금 총액도 2010년 30억원에서 지난해 24억원 규모로 크게 감소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아직도 헌혈증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많다”며 “잠자고 있는 헌혈증을 깨워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전달될 수 있도록 적극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요진 기자 tru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