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만과 전쟁’ 멕시코, 정크푸드·탄산음료稅 논란
입력 2013-10-22 18:03
멕시코 하원이 지난 16일 정크 푸드(고열량 저영양 식품)와 탄산음료에 세금을 부과하는 조세개혁법안을 통과시킨 뒤 ‘비만세’ 징수에 대한 적정성 논란이 일고 있다.
정부는 가격이 올라가면 정크 푸드와 탄산음료 소비량이 줄어 비만비율이 줄어들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서민들 허리만 휜다는 반발이 적지 않다. 코카콜라 등 관련 기업은 상원에서의 법안 통과 저지에 사활을 걸고 있다. 자칫 밀렸다간 인도, 중국 등 다른 나라에까지 비만세 도입이 번질까 우려되기 때문이다.
◇비만과의 전쟁=멕시코에선 정부의 비만세 도입 방침에 대한 반감이 팽배하다. 법안은 정크 푸드에는 100g당 5%의 추가 부담금을, 탄산음료에는 ℓ당 1페소(약 82원)를 더 걷기로 했다. 수도 멕시코시티에 사는 캐서린 듀란씨는 비만세에 대해 “악마”라고 표현했다. 그는 21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탄산음료는 이미 일상의 한 부분”이라며 “얼마가 되든 사 마실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소프트드링크협회(ANPRAC)에 따르면 멕시코 국민 1인당 탄산음료 연간 소비량은 163ℓ다. 한 사람당 매일 콜라 1캔 좀 넘게 마신다는 얘기다. 멕시코는 세계에서 가장 뚱뚱한 나라 1, 2위를 미국과 다투는 중이다. 지난해 기준 멕시코 비만인구는 32.4%로 미국의 35.7%에 육박한다. 당뇨병 환자비율은 10.8%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정부의 비만세 징수 의지는 어느 때보다 높다.
하지만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은 비만인구가 서민에 집중돼 있다는 점이라고 FT는 지적했다. 멕시코에서 빈곤선 이하의 인구비중은 45.5%에 달하고, 멕시코 가정 중 8.5%는 상수도가 설치돼 있지 않다. 물보다 탄산음료를 더 손쉽게 살 수 있는 상황이다. 비만세가 저소득층의 경제적 부담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큰 셈이다.
코카콜라 등을 회원사로 두고 있는 ANPRAC는 탄산음료가 이미 소비세 부과목록에 포함돼 있어 비만세까지 걷으면 이중과세라고 강조한다. 비만·당뇨의 원인은 탄산음료보단 치즈와 크림을 듬뿍 얹은 토르티야, 퀘사디야 같은 멕시코 전통음식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또 탄산음료 소비가 5분의 1로 줄더라도 이는 하루 35㎈ 감소되는 수준에 불과하다는 설명이다. ANPRAC는 이런 내용을 신문광고에 싣는 등 전면 대응에 나서고 있다. 반면 비정부기관(NGO)은 세금을 더 걷어 학교, 공공장소에 수도시설을 설치하는 것이 근본적 해법이라며 맞서고 있다.
◇덴마크는 비만세 폐지=세계적으로 비만인구가 기아인구를 넘어선 가운데, 비만과의 전쟁은 멕시코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프랑스, 헝가리, 캐나다, 미국, 대만 등은 몇 년 전부터 비만세를 걷고 있다. 프랑스는 탄산음료 캔 하나당 0.02유로(약 29원)를 부과하며 헝가리는 소금·설탕함량이 높은 가공식품에 개당 10포린트(약 55원)의 부가세를 매기고 있다. 하지만 세계 처음으로 비만세를 도입했던 덴마크는 지난해 시행 1년 만에 폐지하기로 했다. 덴마크는 2011년 포화지방 ㎏당 16덴마크크로네(약 3400원)를 부과했다. 하지만 고기 버터 우유 등 서민 물가만 뛰고, 생각만큼 세금도 걷히지 않았다. 국민들은 급기야 식품 사재기를 하러 국경까지 넘나들기에 이르렀다.
우리나라는 무소속 문대성 의원이 지난 5월 패스트푸드, 탄산음료 등에 비만세를 매기는 국민건강증진법 일부법률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지만 아직 계류 중이다.
백민정 기자 min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