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어가는 산업현장] 58세 직원 “내 또래나 나보다 고령인 사람들 많다”

입력 2013-10-22 17:44


“앞으로 5년이나 일할 수 있으려나. 나이가 많아서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네.”

일을 하다가 잠시 쉬러 나온 정재영(58)씨가 지친 얼굴에 엷은 미소를 띠고 말했다. 경기도 안산시 성곡동 635-7번지. 18개 도금업체가 모여 있는 아파트형 공장 단지다. 4층짜리 빨간 벽돌 건물들 가운데 정씨의 일터인 ㈜SKC가 있다. 가을비에 공기가 제법 쌀쌀해진 지난 15일 오후, 건물 1층 작업장에서 만난 회색 작업복 차림의 정씨는 이마가 조금 벗겨져 있었다.

이 공장에서는 플라스틱으로 모양을 만든 뒤 동·니켈·크롬 등 금속을 입힌다. 대부분 공정은 자동화돼 있다. 정씨는 자동 도금장치인 캐리어에 제품을 거는 일을 맡고 있다. 넓이 990㎡, 높이가 6m가량 되는 작업장에는 여러 액체 약품이 담긴 흰 수조가 줄지어 놓여 있다. 수조 위 천장에 있는 레일을 따라 폭이 2m 정도 되는 캐리어가 앞으로 움직이면서 걸려 있는 제품을 수조에 차례로 담갔다가 빼는 동작이 반복된다. 엠블럼 등 자동차 부품과 수전금구류(욕실·부엌용품)가 만들어진다.

정씨는 “여기에 내 또래나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들이 많다”며 “요즘 젊은 사람들은 이런 작업 현장에는 안 오려고 해서 그런지 청년들을 본 적이 없다”고 했다.

공장이 빠르게 늙어가고 있다. 젊은이들이 생산직·중소기업을 외면하면서 숙련기술의 단절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기초산업의 허리가 끊어질 지경이다. 무역협회에 따르면 50대 이상(준고령층) 생산직 인구는 2000년 164만명에서 올해 418만명 수준으로 2배 이상 늘었다. 전체 생산직 근로자 중 이들의 비율도 23.1%에서 48.3%로 증가했다. 하지만 같은 기간 청년층 비율은 17.8%에서 8.8%로 하락했다.

이 기간 연령대별 생산직 취업자 수 변화는 더 놀랍다. 남성의 경우 청년층 근로자는 45만1000명 감소했지만 준고령층 근로자는 163만명 증가했다.

학력별로 분석했을 때도 청년층 고졸 생산직 근로자 수는 2000년 112만2000명에서 2013년 51만명으로 반 토막 났다. 반면 고졸의 준고령층 생산직 근로자는 2000년 161만4000명에서 올해 390만2000명으로 2배를 훌쩍 넘었다. 청년층 고졸자마저 생산직 일자리를 외면하는 것이다.

SKC에서 20년째 근무 중인 한계상(48) 공장장도 곧 50대에 접어든다. 한씨는 “작업이 거의 자동화돼 있기 때문에 현장은 그다지 위험하지 않은데도 젊은 사람들은 오려고 하지 않는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일하던 사람들이 나이를 먹어가며 계속 남아 있고 뒤를 이을 사람은 없는 형편이다.

자재 구매부서 신기주(41) 차장은 이 회사에서 보기 드문 40대 초반이다. 첫 직장인 이곳에 관리직으로 입사해 15년을 일했다. 신 차장은 “약품관리, 제품관리, 외국인 직원 관리 등의 업무는 아무래도 노하우가 필요하다”며 “젊은층이 지원을 안 하는 건 월급이 적기 때문일 것”이라고 씁쓸해했다.

1950년대 중반에서 1960년대 초반 사이에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 대부분은 10년 안에 은퇴할 것으로 전망된다. 청년층이 기피하는 생산직을 중심으로 숙련기술이 끊길 우려가 커지고 있는 이유다. 90년대 이후 제조업 현장의 젊은 인력은 대부분 외국인 근로자로 대체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언젠가는 자신의 나라로 돌아간다.

SKC 신정기 사장이 회사 기틀을 잡던 80년대에는 일본에 있는 도금업체에 뻔질나게 견학을 다녀오면서 기술 따라잡기에 열정을 쏟았다. 젊은 기술자들의 피와 땀 덕분에 우리 도금기술은 해외에서도 인정받는 수준이 됐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동안 이뤄놓은 기술을 이어받을 인력이 부족한 상황에 직면했다.

해법은 없을까. 신 사장은 “직업교육대학에서 일정 과정을 수료한 학생에게 업체에서 5년 정도 근무하면 병역특례 혜택을 주는 방안을 정부에 건의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생산직으로 취업할 가능성이 높은 고졸 취업준비생 등을 대상으로 위탁 직업교육을 확대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취업난으로 대졸자의 생산직 취업도 점차 늘고 있는 점을 감안해 이들에게 적합한 훈련 프로그램을 제공해야 한다고도 주장한다. 정년연장, 임금피크제 등 고령 인력을 위한 근로시스템 개선도 병행돼야 한다. 무역협회 오호영 객원연구위원은 22일 “대학과 기업 요구 간의 미스매치 해소를 위한 대학생 대상 도제제도 도입이 필요하다”면서 “더불어 정부 지원 하에 고령 기술·기능 인력이 가지고 있는 노하우를 데이터베이스화해 접근하고 활용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안산=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