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틴 루터作 ‘내 주는 강한 성이요’ 한국교회에 일사각오 신앙 심어줬다”

입력 2013-10-22 17:40 수정 2013-10-22 21:51



1940년 3월24일 부활절 아침. 예배를 앞둔 평양 산정현교회에는 긴장감이 흘렀다. 교회 안팎과 출입문마다 일본 경찰이 성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일제의 회유로 평양노회가 신사참배를 결의한 이후에도 줄 곳 이를 거부해오던 이 교회 담임 주기철(1897∼1944) 목사와 성도들을 겨냥한 노골적인 압박이었다. 성도들은 어느 때보다 일찍 교회에 모였다. 예배가 시작되기 직전 한 집사가 찬송가를 들고 강단에 올랐다. 그는 204장(새 찬송가 585장)을 편 뒤 힘찬 목소리로 노래하기 시작했다.

“내 주는 강한 성이요 방패와 병기되시니 큰 환란에서 우리를 구하여 내시리로다….”

800여 성도들의 목소리가 함께 울려 퍼졌다. 3절까지 모두 부른 뒤에도 성도들은 같은 찬송을 반복하고 또 반복했다. 경찰들이 당황했다. 예배실 안으로 들어온 일본 경찰들은 “그만하라”고 제지했다. 찬송 소리는 오히려 더 커졌다.

급기야 강단에 서 있던 집사가 경찰에 끌려 예배당 밖으로 쫓겨났다. 그 순간에도 성도들은 이 찬송을 멈추지 않았다. 이날 주 목사와 일부 교인들은 경찰에 체포됐고 교회는 잠정 폐쇄됐다.(박용규의 ‘평양산정현교회’·생명의말씀사)

교회음악·성악을 전공한 김철륜(사진) 안양대 부총장은 22일 “‘내 주는 강한 성이요’ 찬송이 한국교회의 역사에서 갖는 의미는 각별하다”면서 “백절불굴의 신앙과 영성을 담은 대표적인 찬송”이라고 평가했다.

앞서 김 부총장은 지난 18일 한국기독교학회 주최로 열린 제42차 정기학술대회에서 ‘평양 산정현교회와 내 주는 강한 성이요’를 주제로 한 소고(小考)를 발표, 참석자들로부터 주목을 받았다.

이 찬송은 1529년 독일의 마틴 루터(1483∼1546)가 재판 전날 밤, 그의 추종자들에게 용기를 북돋기 위해 지은 곡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시 46:1)’라는 성경 구절에서 영감을 받았다. 선교 초기 한국교회에 소개된 이 찬송은 일제 강점기와 6·25전쟁 등을 거치면서 특별한 의미를 더했다. 신사참배와 무신론 사상을 거부하며 ‘일사각오’로 믿음을 고수했던 크리스천 선배들의 살아있는 신앙고백으로 승화했다고 김 부총장은 의미를 부여했다.

1948년 6월 25일. 주기철 목사 후임으로 산정현교회 담임을 맡고 있던 김철훈(1904∼1948) 목사가 공산당원에 붙잡혀 가는 순간에도 이 찬송이 불렸다.

김 목사의 부인 연금봉(102·서울산정현교회) 전도사에 따르면 김 목사가 공산당원들에 끌려 나갈 당시 교회 성도들은 평양의 전차 길 한가운데 누워 이 찬송을 부르고 또 불렀다. ‘땡땡’ 소리를 내며 전차가 달려와도 성도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찬송을 합창했다고 연 전도사는 증언했다.

이 곡은 루터가 만든 찬송 36곡 중 유일하게 한국 찬송가에 실린 곡이다. 1700년대 중반 ‘근대 음악의 창시자’ 요한 세바스찬 바흐(1685∼1750)가 오늘과 같은 형태로 편곡했다.

박재찬 기자 jeep@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