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선 목사의 시편] 금산교회 당회록
입력 2013-10-22 17:25
며칠 전 우리교회 성도들과 함께 한국기독교역사 탐방을 했습니다. 1905년에 설립된 김제 금산교회도 들렀습니다. 그 교회 역사를 통해 많은 도전을 받았는데 예배당 안의 전시물 중 어떤 당회록에 눈이 갔습니다. 1921년 10월1일 오후 8시 예배당에서 회집된 17회 당회 회의록인데 결의된 내용은 이랬습니다.
“김 아무개와 김 아무개 모친은 가정불화에 관하여 권면하고 김 아무개 댁 김 아무개는 부모 불효와 주일 범하므로 회개할 동안 성찬 불참케 한다. 김 아무개는 주일 범하므로 권면하고 이 아무개는 도박한 일로 출교하고 박 아무개는 귀신 공경하므로 출교하고 김 아무개는 도박일로 학습 제명하고 조 아무개는 신행을 심사키 위하여 호출하기로 가결하다.”
1920년대 우리나라 기독교인의 수는 불과 20만 명이 조금 넘었습니다. 그러나 교회의 대사회적 영향력은 매우 컸습니다. 어떻게 당시 교회가 세상에 영향을 끼칠 수 있었는지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는 당회록 이었습니다. 교회는 교인들의 신앙생활, 일상의 삶을 중요하게 여겼을 뿐 아니라 잘못된 삶을 사는 교인들에 대하여 매우 엄격하게 권징을 했던 것입니다. 이 한 편의 빛바랜 당회록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당회가 교회를 바로 세우기 위해 교인들의 생활에 대해 구체적으로 지도하고 권징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비단 금산교회만의 일은 아닙니다. 당시는 오늘날처럼 교회가 많지 않았고 예배당 건물도 오늘날처럼 화려하고 크지도 않았지만 이런 권징을 통해 교회를 든든하게 세우고 교인들의 삶을 건강하게 지켜줄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교회가 사회로부터 존중 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화려하고 웅장한 건물에 수많은 교인들이 모이는 오늘날의 교회에서 이런 권징을 찾기 힘들어졌습니다. 따라서 교회나 그리스도인들이 세상 사람들에게 존중받을 만큼 구별된 삶을 사는 것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형편입니다. 교인들의 생활지도를 책임져야 할 교회가 교인들의 삶을 건전하게 지도하기를 포기한 것으로 보입니다. 교회 일에 열심을 내고 헌금 열심히 하면 그만이고 수많은 사람이 몰려온다면 그것을 부흥으로 생각하는, 그래서 권징에 대해서는 엄두를 내지 못하는 교회에서 금산교회 당회록 같은 기록을 기대할 수는 없게 되었습니다. 교회는 많아져 선택의 폭이 넓은 가운데 마음에 드는 교회를 찾아 갈 수 있는 환경이 자리 잡은 지 이미 오래되었습니다.
교인은 영적 상품의 소비자일 뿐입니다. 보다 편안하고 안심이 되는 영적 상품을 고르는 구매자가 되었습니다. 그런 교인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설교자는 자기검열을 강화합니다. 거기에 자녀교육에 목을 매는 세대에게 그에 부합되는 영어예배 등 럭셔리한 생활을 보장할 패키지 상품까지 개발하여 고객만족에 힘을 쏟고 있습니다. 교인들을 아프게 깨우치고 건강하게 세우지 못하는 교회, 소비자의 구매욕구를 자극하여 매출을 올리려는 백화점과 다를 바 없는 교회는 세상에게 계속 외면을 당할지 모릅니다.
<산정현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