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떠나야 한다”… 목숨 걸고 지중해 건너는 난민들

입력 2013-10-22 17:15 수정 2013-10-22 23:02


압데 일행이 리비아 숙소를 나선 건 지난 10일(현지시간) 오후였다. 밀입국업자들을 따라갔다. 비용은 이미 지불했다. 이탈리아까지 데려다 줄 뱃삯이었다. 유럽 땅만 밟으면 스웨덴까지는 어떻게든 올라갈 수 있다. 일행은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친척이 스웨덴에 산다. 압데는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의 팔레스타인 난민캠프 출신이다. 내전이 계속되자 이주를 결심했다. 동생과 삼촌이 동행했다.

◇난파

땅거미 진 해안으로 이민자들이 모여들었다. 가난, 박해, 전쟁 등을 피해 집을 떠나온 사람들이었다. 모두 해질녘까지 기다렸다. 밀입국업자들은 배가 튼튼하다며 안심시켰다. 눈앞에 나타난 건 작은 목선이었다. 압데는 “배를 봤을 땐 너무 늦은 상황이었다. 더 이상 집은 없었다”고 말했다.

약 250명을 태운 배는 얼마 못 가 불길에 휩싸였다. 이탈리아 영해에 진입한 뒤 총격을 받았다. 뒤따라오던 리비아 해안경비대가 발포한 듯했다. 반군 짓일 수도 있었다. 선장과 여자들이 총에 맞았다. 배 밑 엔진실엔 구멍이 뚫렸다. 물이 차올랐다. 승객들이 막으려고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배는 그 상태로 이탈리아 람페두사섬 인근에 도달했다. 파도가 배를 다시 몰타 쪽으로 밀어붙였다. 선장은 방향 감각을 잃은 듯 보였다. 소녀들은 소리를 지르며 울었다. 적십자는 구조대 도착까지 40∼50분 걸린다고 응답했다. 배는 중심을 잃고 좌우로 흔들렸다. 배가 기울면 승객들은 반대편으로 몰려가며 균형을 유지하려고 했다. 이들이 우현에 있을 때 좌현으로 몰아친 파도가 배를 뒤집었다.

파도는 물에 빠진 난민들도 갈라놨다. 일부는 일행을 찾아 헤엄쳤다. 그렇게 1시간 이상 기다린 것 같다고 압데는 영국 BBC방송에 말했다. 난민들은 구명조끼를 입고 있었다. 몰타와 이탈리아는 11일 오후 공동 구조작업을 벌였다. 생존자 221명이 몰타나 람페두사로 보내졌다. 30여명은 숨졌다. 현재 람페두사 수용시설에 있는 압데는 동생이 몰타로 갔다고 믿는다. 삼촌 생사엔 확신이 없어 보였다.

◇유럽으로 가는 길

람페두사 앞바다에선 지난 3일에도 밀입국 선박이 전복돼 300명 이상 숨졌다. 16일에는 몰타 해안 남서쪽에서 같은 사고가 재현됐다. 지중해 정찰 중이던 미국 해군 상륙수송함이 20∼30대 남성 128명을 구조했다. 감비아 기니 말리 나이지리아 세네갈 등 대부분 아프리카 중동부 출신이었다.

매년 수천∼수만명이 아프리카 북부 해안에서 지중해를 건넌다. 빈곤과 분쟁을 견디지 못하고 아프리카와 중동 등지에서 썰물처럼 쏟아져 나온 사람들이다. 이들은 작고 낡은 배에 목숨을 맡긴다.

주요 경로는 국경 경비가 얼마나 삼엄한지에 따라 달라졌다. 이주민이 늘면 해당 국가는 경비를 강화한다. 10년 전 대다수가 이용한 경로는 서아프리카에서 스페인으로 가는 ‘서지중해 루트’였다. 모로코 북부의 스페인 영토 세우타와 멜리야, 서사하라에서 가까운 카나리아 제도도 목적지나 경유지였다. 이 길로 유럽에 진입한 난민은 2006년 약 3만2000명이었다. 2011년에는 5443명까지 줄었다.

2008∼2012년 난민들은 주로 ‘동지중해 루트’인 터키와 그리스 사이를 건넜다. 터키 수도 이스탄불에서 배를 타고 그리스 아테네로 가는 경로다. 이주민이 늘자 그리스는 경찰 1800명을 국경에 배치해 경비를 강화했다. 난민들은 국경 통제가 완화되길 기다리며 터키에서 머물고 있다. 유럽 국경관리청 프론텍스도 그리스가 삼엄한 국경 경비를 지속할 수 있을지에 의문을 던진다.

리비아나 튀니지에서 이탈리아와 몰타 등지로 가는 ‘중지중해 루트’는 지난 10년간 난민 통행량이 주기적으로 급증했다.

유엔난민기구(UNHCR)는 2005년 북아프리카에서 이탈리아로 유입된 난민을 약 2만5000명으로 집계했다. 2009년에는 9573명으로 줄었다. 리비아 내부 분쟁이 격화한 2011년에는 6만1000명 수준까지 늘었다.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 정권이 몰락한 시기에 최고조에 달했다. 유엔은 올해 들어 최근까지 약 3만2000명이 이탈리아와 몰타에 도착했다고 밝혔다.

◇리비아

‘중지중해 루트’는 대부분 압데 일행이 배를 탄 리비아 북부 해안에서 출발한다. 난민들에게 리비아는 오랫동안 최상의 출발지점으로 꼽혔다. 유럽에 근접해 있으면서 광범위하게 펼쳐진 해안선이 밀입국에 유리하다. 밀입국업자들은 사실상 무정부 상태인 리비아 정세를 이용한다. 엉망인 치안은 과도정부 수반인 알리 제이단 총리가 지난 10일 반군에 납치됐을 때 가감 없이 증명됐다.

수도 트리폴리에 머물고 있는 20대 튀니지 남성 2명은 자국보다 리비아가 유럽으로 가기에 더 쉬운 지역이라고 BBC에 말했다. 그가 떠나온 튀니지도 유럽행 난민에게 또 하나의 주요 출발지다.

이들은 “튀니지에서 이주한다면 성공 기회는 50%지만 리비아에선 80∼90% 정도 된다고 들었다”며 “친구나 가족 중에 리비아에서 바다를 건너 유럽에 정착한 사례가 있다”고 했다.

이들 중 한 명은 튀니지에서 4차례 유럽행을 시도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충분한 돈이 마련되면 리비아에서 배를 탈 계획이다. “튀니지에선 이웃 남자 절반이 리비아에서 출발하는 뱃삯을 마련하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다 해봤어요. 어머니의 금, 농장의 염소나 젖소 등을 팔기도 하죠.”

다른 남성(23)은 16세 이후 유럽에 가는 방법 말곤 다른 걸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의 왼손 중지엔 ‘Partir|JDS’라는 문신이 새겨져 있었다. ‘나는 반드시 떠나야 한다’는 뜻이다.

“이곳 리비아 거리에선 주민 절반이 프랑스로 이주해 지금은 현지 여자랑 결혼해서 살아요. 튀니지에 투자도 하고요. 괜찮은 삶을 사는 거죠.” 확인된 사실인지 불분명했다. 확신에 찬 그는 말을 이었다. “튀니지에선 1000년을 살아도 이룰 수 있는 게 없어요. 결혼도 못하고 가난 속에 살아야 해요.”

유럽 이주 여정에 드는 돈은 2500달러(약 265만원) 정도다. 여정을 수월하게 해주는 ‘밀입국 반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튀니지 남성들은 말을 멈추고 더 설명하지 않았다.

◇위험한 여정

난민들은 여러 이유로 아프리카를 떠난다. 일자리를 찾기 위해, 정치적 박해와 강제 징병을 피하기 위해, 친척과 살기 위해. 단지 안전하고 자유롭게 살려고 떠나는 사람도 많다. 유럽행 난민 상당수가 독재나 분쟁 국가 출신이다. 올해 들어 지난달 말까지 북아프리카에서 이탈리아로 건너온 난민은 시리아와 에리트레아 국적이 각각 7500명으로 가장 많았다. 소말리아 출신이 3000명으로 뒤를 이었다. 난민 대부분은 더 나은 삶을 담보로 위험을 감수한다. 정식 절차를 밟지 않고 유럽으로 이주하는 방법은 자신을 범죄조직 손에 맡기는 것뿐이다.

여정은 아프리카 대륙을 가로지르는 장거리 여행으로 시작된다. 트럭을 갈아타며 이집트 리비아 알제리 모로코 등지의 경유지와 집결지를 거친다. 지중해변에 도착하면 마지막으로 배를 탄다. 이 과정은 비싸고 위험하다. 교통수단은 열악하고 날씨는 거칠다. 밀입국 알선업자는 돈을 먼저 챙긴다. 배를 타더라도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다. 지난 20년간 바다에 빠져 죽은 난민만 약 2만명으로 추정된다.

모든 난민이 배를 타지는 않는다. 대다수는 여건이 좀 더 나은 아프리카 국가에 남아 일거리를 구한다. 원해도 승선하지 못하는 난민도 적지 않다. 리비아는 사막을 가로지르는 난민을 체포해 구속하거나 추방해왔다. 난민이 자국으로 돌아왔을 때 망명 진위를 떠나 수감하거나 모국으로 보내기로 이탈리아와 합의한 바 있다. 인권단체들은 비난했다. 정부 연계 반군이 감시하는 구금시설은 학대와 고문 의혹을 받고 있다. 리비아에는 아직 망명자를 관리하는 법이 없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