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人터뷰] 김영희 MBC 대PD 겸 특임국장
입력 2013-10-22 17:12
“소통·배려하는 사회통합 예능프로 연말쯤 나올 것”
김영희 MBC 대PD 겸 특임국장(53)은 개그우먼 이경실이 말한 대로 영락없이 ‘쌀집 아저씨’였다. 지난 18일 경기도 고양시 장항동 MBC드림센터에서 어렵사리 만났더니 대뜸 “인터뷰 꼭 해야 하냐”며 웃었다. 캐주얼 재킷에 검정 라운드티를 겹쳐 입은 모습이 친근함 그 자체였다. 그는 예능PD 사이에 ‘살아 있는 전설’로 통하는 이른바 대박PD다. 그의 작품은 전파만 타면 시청률이 30∼50%를 넘나들었다. 누구도 생각지 못한 새로운 장르의 프로그램이 나왔다. 이른바 ‘김영희 장르’다. MBC의 ‘일요일 일요일 밤에’ 중 이경규의 양심냉장고 시청률은 40∼50%대의 경이적 기록을 남겼다. 지난 2011년 음악과 예능을 결합한 ‘나는 가수다’도 가수 신드롬을 일으켰다. ‘창작, 그 아픔의 뒤안길’을 누구보다 잘 아는 김PD. 그는 개인의 창의적 아이디어에 저작권을 인정하면 한국에서도 스티븐 스필버그와 빌 게이츠가 나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나는 가수다’ 이후 어떤 활동을 하고 있나.
“올 초부터 플라잉 디렉터(FD·Flying Director)로 중국판 ‘나가수’를 제작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30일 국내에서 ‘나가수 시즌2’ 제작을 마치고 올 초 중국으로 떠났다. 생소하지만 플라잉 디렉터는 포맷시장(Format Market)을 겨냥한 새로운 영역이다. 이전에는 한국 방송 콘텐츠를 CD나 테이프로 수출했다면 플라잉 디렉터는 현지에 가서 한국 방송 콘텐츠의 포맷을 그대로 적용해 똑같은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자문 역할을 한다. 예를 들면 ‘나가수’ 프로그램 제작 과정에서 출연자 섭외, MC, 화면구성 및 자막처리, 음향, 카메라워킹 등 모든 제작 노하우를 담은 두꺼운 책자를 갖고 중국 현지에서 동일 프로그램을 제작하도록 자문한다. 이 책자를 PD들은 ‘바이블’이라고 한다(웃음). 중국 가수와 연예인이 출연할 뿐 한국의 ‘나가수’와 동일한 프로그램이다.”
-다소 생소한 포맷 시장이 새로운 한류시장을 연다는 건가.
“알다시피 10년 전 MBC 드라마 ‘대장금’이 첫 한류시대를 열었다. 이후 지금까지 드라마는 테이프나 CD로 수출되어 왔다. 외국 방송사는 이를 구매해 자기들 언어로 자막을 넣거나 더빙을 해서 방송했다. 그런데 지금 중국에서 제작 중인 ‘나가수’는 이와 전혀 다르다. 앞서 말한 포맷이란 제작PD만이 갖고 있는 제작기법과 노하우, 아이디어를 판매하는 것이다. 포맷 시장은 중국 등 현지에서 한국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을 아예 제작하는 시장이라고 보면 된다. 프로그램을 제작한 해당 PD만 현지에 가면 된다. 한국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이 글로벌 스탠더드를 만들어가고 있고, 세계시장은 이제 우리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중국에서 한국 드라마, 예능이 인기가 있나.
“중국 후난TV에서 처음 제작된 중국판 ‘나가수’가 위성방송을 통해 중국 전역에 방송됐다. 석달간 13회 방송되었는데 압도적 1위를 차지했다. 첫 방송이 시청률 1.9%를 기록하더니 마지막에는 4%를 넘어섰다. 13억 인구의 중국에서 시청률 1%를 넘는다는 것은 보통 대박이 아닌 초대박이다.
중국 34개 성은 각 방송사를 운영하고 위성방송으로 송출한다. 중국 34개 성의 지역방송과 베이징의 CCTV 등 40개 방송사가 치열한 경쟁을 한다. 그런데 ‘나가수’ 외에도 올 상반기에만 KBS 2TV의 ‘불후의 명곡’과 ‘1박2일’, SBS의 ‘런닝맨’, 그리고 Mnet의 ‘슈퍼스타K’, MBC의 ‘아빠! 어디가?’ 등 6개 작품이 상위권에 올랐다. 지난주(10월 둘째주)엔 ‘아빠! 어디가?’는 중국 전역에서 1위를 했다. 그러니 포맷 시장으로 눈을 돌려야 하는 것이다. 한류도 시야를 넓혀가면 그것이 문화 수출을 통한 ‘창조경제’가 된다고 본다.”
-중국이 한국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을 주목하는 이유는?
“‘나가수를 만든 PD’라고 초청을 받아 베이징대에서 강연을 한 적이 있다. 거기서 만난 CCTV 관계자가 MBC 프로그램 납품을 이야기하던 중 15년 전 방송된 ‘이경규가 간다’(1996∼1998)의 양심냉장고 프로그램을 은근히 탐내더라. 그런데 후난TV도 양심냉장고 프로그램을 보여 달라며 역시 지대한 관심을 보여 왔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을 치른 중국이 이제 국민의식 개혁이 필요한 시점임을 느끼는 것 같더라. 당 차원에서 양심냉장고 같은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보는 것 같다. 한국이 1988년 서울올림픽을 치른 지 10년 만에 양심냉장고를 통해 선진국 수준으로 사회의식을 높였던 것과 비슷하다.
중국이 베이징올림픽을 주최한 게 불과 5년 전인데 사회질서 의식을 선진국 수준으로 올리려 하는 것이다. 그만큼 중국이 우리를 바짝 쫓아오려 하고 있다. 중국이 한국 방송 콘텐츠를 주목하는 이유다.”
-기존의 한류 시장과 전혀 다른 시장이 있는 것인가.
“MBC의 ‘대장금’이 지난 10년간 중국, 동남아에 한류 시장을 열며 주도해 왔다. 이제 ‘나가수’ 등 포맷 시장이 향후 10년을 이끌 것이라고 중국 방송 관계자들이 말한다. 우리가 미처 몰랐지만 BBC나 안데몰 등 유럽과 미국의 주요 방송사 및 제작사들이 포맷 시장을 석권해 왔다. 중국 미국 등 전세계 포맷 시장은 약 6조원 규모로 추정한다. 그런데 BBC 등이 3조원 달성을 목표로 매년 뛰어들고 있다. 중국 동남아 시장만 해도 약 1조원 시장으로 본다. 지금 추세대로 한류 시장이 커진다면 1조원 시장은 우리 몫이 된다는 것이다.”
-문화산업을 육성하는 정부 차원의 지원책은.
“‘보이지 않는 사람의 생각’에 저작권을 주는 방안이 시급하다고 본다. 내가 만든 프로그램에 대한 저작권은 당연히 내가 속한 MBC에 있다. 그런데 개인의 창조적 아이디어의 저작권이 회사 조직과 동시에 개인에게도 있다면 그 개인은 더욱 분발한다. 한·미 FTA 협정 조문에도 개인의 저작권 권리가 인정되도록 돼 있다. 하지만 국내에 판례가 없다. 개인의 창의적 아이디어와 생각도 모두 회사와 조직에 귀속된다.
관련 분야 변호사들은 “아직 우리 사회가 의식수준이 안 되는데 문제만 야기하니 좀 기다려라”고 말하더라. 하지만 국가 차원에서 창의적 아이디어를 가진 개인 권리를 단 몇 %만 인정해주면 아마 엄청난 발전이 뒤따라올 것이다. 한국에서도 빌 게이츠와 스필버그 같은 인물이 나올 것이다. 창의성에 바탕을 둔 창조경제에도 획기적 발전이 있을 것이다.”
-향후 국내 방송예능 시장을 진단해 달라.
“시장이 굉장히 적다. 한국 인구가 고작 5000만명인데 지상파 4개, 종합편성채널 4개, 케이블방송까지 합치면 수십개 예능 채널이 있다. 이미 예능 시장은 포화상태다. 광고물량이 적은 한국 시장을 서로 분할해 먹고살고 있다. 그러니 시청률에 급급해 아류가 나올 수밖에 없다. 창의적 아이디어로 프로그램을 만들면 금세 다른 데서 3∼4개 아류 프로그램이 나온다. 지금 인기 있는 리얼 ‘아빠! 어디가?’나 ‘진짜 사나이’를 벌써 모방한 아류가 많이 생겼다.
예능 프로를 너무 쉽게들 만든다. 첫 작품이 유행하면 얼마 있지 않아 베끼기로 다른 유사 작품이 나온다. 베끼기는 이제 사회적으로 문제삼아야 할 때다. 아마 미국사회 같으면 엄두도 못 냈을 것이다. 우리 방송에서는 방송사, PD들이 변형하고 모방하고 전혀 다른 것처럼 만든다. 이제는 아이디어를 준 원작자에게 저작권 권리를 인정하든지 아니면 완전히 다른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
-tvN 나영석PD가 연출한 ‘꽃보다 할배’를 보았나.
“나 PD는 정말 대단한 분이다. 그에게 ‘꽃보다 할배’ 저작권의 지분을 일부 인정해준다고 하자. 아마 이보다 더 경쟁력 있는 작품을 계속 만들어낼 분이다. 그런 식으로 PD의 창의성을 제고해준다면 우리나라 코미디 예능산업을 더 크게 성장시키게 될 것이다. 그런데 ‘꽃보다 할배’를 보고 영감을 얻어 다른 비슷한 프로를 만들더라. ‘꽃보다 할배’ 같은 비슷한 프로를 만들려면 나 PD에게 저작권료를 지불하든지 아니면 다른 새로운 예능 프로를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닌가.
아이디어는 간단하다. 복잡하면 아이디어가 아니다. 그러나 간단한 아이디어가 그리 쉽게 나오는 게 아니다. 새 아이디어는 인내와 고통에서 나오는 것이다. 나도 아이디어를 짜내려 미친 듯 몰두하고 며칠씩 방에 틀어박힌다. 영화를 봐도 밤샘하며 열댓편씩 본다. 잠을 자도, 밥을 먹어도 오직 아이디어만 생각한다.”
-자신의 예능철학이 뭐라고 생각하나.
“예능 프로그램은 즐거움 그 자체다. 프로를 보면 마음이 즐거워져야 한다. 즐거움이 넘치는 예능 프로를 보고 나면 기분이 즐겁고 저녁이라면 기분좋게 잠을 잘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즐거움이 없거나 뭔가 뒷맛이 개운하지 않으면 좋은 프로그램이 아니다. 예능 PD를 25년 넘게 한 지금도 ‘그 즐거움이 뭔가’를 여전히 고민한다. ‘나가수’ 초기 제작 당시 목표한 게 있었다. ‘내가 만든 프로를 보면 사람들이 더 행복한 꿈을 꾸며 잘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게 맞아떨어졌는지 ‘나가수’를 보고 시청자들이 열광하며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았다. 나는 목표를 이뤘고 행복하다. 국민들에게 ‘나가수’는 행복을, 가수들의 노래는 감동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예능 PD로서 자신을 평가한다면.
“글쎄요. 내가 나를 스스로 평가하자면, 새로운 것을 겁내지 않고 항상 다시 도전한다는 두 가지일 것이다. 새로운 것을 항상 찾고, 다시 도전하는 것을 좋아한다. 결코 겁내지 않는다. 다들 ‘50대 초반 그 나이 되면 정리하며 살라’고들 한다. 난 그게 아니다. 여행을 가도 혼자 배낭을 메고 떠난다. 2∼3개월 동안 미지의 세계로 가서 새로운 것을 찾는다. 가이드도 없이 정말 무모하게 혼자 가는 여정, 여행이 아닌 고통스러운 나만의 순간에서 새로운 뭔가를 발견한다.
1994년 4월부터 7월까지 3개월간 처음 아프리카에서 홀로 배낭여행을 했다. 돌아와서 만든 작품이 ‘느낌표2’였다. 그리고 1997년 9월부터 11월까지 유럽을 돌며 나홀로 여행했다. 귀국해 제작한 작품이 ‘칭찬합시다’였다. 그 프로그램은 그해 한국방송대상을 수상했다. 그런데 2011년 ‘나가수1’을 시작한 직후 아시는 대로 가수 김건모 사건(?)이 터졌다(웃음). 그래서 남미로 떠나 무려 13개국을 혼자 돌아다녔다.”
-남미 배낭여행 후 새로운 작품이 아직 안 나온 것 아닌가.
“그렇다. 올 겨울에 나올 것 같다. 방향은 시회통합에 기여하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소통되고 서로 통합되도록 하는 그런 프로그램을 만들려고 한다. 구체적으로 아직 그게 뭔지는 모르겠다. 요즘 우리에게 정말로 절실한 게 사회통합 아니냐. 너무 갈라져 있다. 그래서 사회통합이 지금 우리 시대 가장 중요한 가치라고 생각한다. 사회통합은 다른 의견을 동일하게 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서로 다른 의견을 인정해주고 그 사람을 배려해주는 것이 진정한 사회통합이다. 그런 사회 분위기가 만들어져야 한다. 그런 차원에서 사회통합에 기여하고 소통하는 프로그램을 만들겠다는 정도로 가닥을 잡고 있다. PD로서 새 프로그램을 통해 우리 사회통합에 기여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김영희 대PD는
‘예능의 신(神)’ ‘쌀집 아저씨’란 별명이 더 어울리는 MBC 간판스타 예능PD. MBC 최연소 예능국장에 올랐다. 매년 ‘한국 방송을 움직이는 가장 영향력 있는 TV 방송인 30인’에서 상위에 오른다. MBC의 인기 예능 프로그램 다수가 그의 손에서 나온다. 대표적으로 ‘나는 가수다’는 한국을 대표하는 예능 프로로 새로운 한류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진짜 쌀집 아저씨 같은 친근한 외모와 달리 새 작품에 대한 그의 집념은 무서우리만큼 날카롭다. 부인 박희경(50)씨조차 “참 특이한 사람”이라고 한다. 새로움에 대한 도전이 삶의 철학이다. 창의가 고갈되면 2∼3개월 아프리카 남미 유럽 등 미지의 세계로 배낭 메고 홀로 떠났다. 귀국 후 그의 프로는 대박이 났다.
한국방송대상부터 대통령상까지 국내외 상이란 상은 다 받았다. 그가 첫 시도했던 촬영 현장 녹음, 스태프 출연, 자막 넣기 등은 예능 제작 매뉴얼이 되었다. 1996년 연출한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이경규가 간다-양심냉장고’편은 한국인 질서의식의 차원을 높였다. 최근 가수 백지영 등 연예인과 스태프의 요청으로 13차례 결혼 주례를 서다 보니 ‘주례PD’란 별명도 얻었다.
△1960년 부산 △서울대 국어교육과 △1986년 MBC 예능국 입사 △MBC 예능국장 △한국PD연합회장 △MBC 대PD 겸 특임국장 △한국방송대상, 휴스턴국제영화제 TV예능대상, 대통령상 국무총리상 검찰총장상 수상 △‘신 웃으면 복이 와요’ ‘이경규가 간다’ ‘책을 읽읍시다’ ‘느낌표’ ‘칭찬합시다’ ‘나는 가수다’ 등 다수 예능 프로그램 연출
김경호 논설위원 kyungh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