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성태윤] 실물과 금융의 간극 줄여야
입력 2013-10-22 18:27
최근 동양 사태가 발생하고 한국은행이 경제성장률 전망을 낮추며 한국경제의 장기 침체에 대한 우려가 확산되던 시점, 미국에서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재닛 옐런을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이하 연준) 의장에 지명하면서 현재의 통화정책 기조를 유지해 미국경제 회복세를 지속시킬 것이라는 기대가 확산됐다. 물론 의회의 승인을 받아야 하지만 연준 최초의 여성 의장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여성 경제학자라는 측면, 그리고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 애컬로프 교수가 남편이라는 개인사가 부각되기도 했지만 그녀의 경제정책 핵심은 실물, 특히 고용을 강조하는 금융이다. 따라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실물과 금융 경제의 간극을 줄이는 것이 중앙은행 총재의 중요한 자질로 부각된 상황에서 그녀의 지명은 시대적 요청을 반영한다.
통화정책과 관련된 견해는 흔히 비둘기파와 매파로 구분된다. 매파는 물가의 안정적 유지에 초점을 두는데 비해 비둘기파는 물가보다는 고용 같은 실물경기에 더 관심을 둔다. 따라서 옐런은 비둘기파로 분류되곤 한다.
하지만 그녀가 경기 부양만을 추구하는 맹목적인 비둘기인 것은 아니다.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 물가 압력이 거세지던 시기엔 인플레이션에 대응해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하고, 부동산 거품에 대한 경고를 제시하기도 했다. 현재의 경기 및 고용을 고려할 때 양적완화가 필요하다는 것이지 언제나 달러를 찍어 경기를 부양할 수 있고 그래야 한다는 것도 아니다.
결국 상황에 맞는 ‘탄력적인 통화정책’을 강조한 것이다. 이것은 그녀가 연준 금융정책에 오랫동안 관여했지만 실물 노동시장을 깊이 연구했던 학자였기 때문에 가능한 주장이다.
경제가 어려워진 시기에 경기를 부양하려면 임금을 낮추고 일자리를 나누는 개념으로 접근해야 한다. 그것이 결국은 많은 일자리를 유지하고, 기업을 쓰러뜨리지 않음으로써 궁극적으로 보다 많은 일자리를 창출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기업이 쓰러지기 전에 명목임금을 낮추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따라서 이러한 상황에서는 통화 공급을 늘려 물가를 안정적으로 상승시키는 통화정책은 임금을 낮추는 효과가 있어 고용을 줄이지 않고도 기업이 버틸 수 있게 만든다. 그리고 이를 통해 실업을 감소시켜 경제 전체로 추가 경기부양 효과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고용 감소나 경기 침체로 임금을 낮춰야 하는 상황이 아니라면 이러한 정책으로 물가를 올릴 필요가 없기도 하다. 오히려 그런 상황에서는 보다 많은 임금이 지급되도록 함으로써 생산성 높은 근로자를 고용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고용주에게도 유용하다는 것인데, 그것이 그녀와 남편을 유명하게 만들었던 ‘효율적 임금가설’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실물경기 상황을 고려한 탄력적 통화정책을 구사한 경제와 그렇지 않은 경제가 어떻게 갈렸는지를 목격했다. 또한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 실물 뒷받침 없던 금융 버블의 위험도 이미 목격했다. 실물 뒷받침 없는 금융은 공허했고, 금융이 막히고 자금 공급이 원활하지 않으면 실물은 일어나지 못한다.
외국인이 주식시장에 들어온다고 환호하지만 한국경제의 허리를 담당하는 중견그룹들은 무너지고 장기 실물 침체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금융과 실물의 간극을 줄일 수 있는 경제정책이 절실하다. 지금 통화·금융정책 핵심은 원활한 자금 공급으로 실물의 축인 기업이 일자리를 유지하고 경기가 회복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실물경기가 궁극적으로 회복되지 않으면 다른 신흥국 사정이 나빠져 들어왔던 자금도 떠나고 실물과 괴리된 금융은 새로운 불안 요소가 될 뿐이다.
연세대 경제학부 성태윤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