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김용신] 이것도 모른 내가 바보다
입력 2013-10-22 17:45
엄마는 1년 전쯤 미각을 상실했다. 아니 상실했다고 엄마 당신이 그러셨다. 병원 검사로는 맛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건 아니라는데 엄마는 도통 아무 맛도 못 느껴 밥도 반찬도 못해 드시겠다고 했다. 그리고 1년간 부엌일에서 손을 놓으셨다. 그러더니 말도 어눌해지고 근육의 감각도 사라진다며 병원신세를 지게 되었다. 검사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도 당신이 얼마나 괴로운지 알지 못한다며 링거를 뽑고 약을 거부하는가 하면 아무짝에도 쓸데없는 존재가 되었으니 죽고 싶다며 병원이 떠나가도록 소동을 피우셨다. 회사에서 허겁지겁 달려온 나는 대체 왜 어린애처럼 그러시냐고 짜증 섞인 화를 뿜어냈고 남동생은 그동안 엄마가 아픈데도 신경쓰지 못해 미안하다고 울먹거렸다. 엄마와 남동생이 서로를 부둥켜안고 울먹이는데, 솔직히 이건 무슨 씨추에이션인가 싶었다. 그 순간, 나는 머리가 하얘졌다. 울 엄마가 원했던 건 그거였구나. 관심과 사랑. 힘들었겠구나 하는 공감. 일생을 바친 가족으로부터 받는 따뜻한 인정.
곧 죽을 것 같다는 엄마를 모시고 한 달을 지내 보니 미각을 잃으셨다는 엄마는 장조림이 먹고 싶다고 하셨고 장조림이 싱겁다며 호통을 치셨고 고구마가 달고 맛있다고 하셨고 반찬이 없다며 투정을 부리셨다.
아빠를 비롯한 가족들은 엄마의 말 한마디에 한걸음으로 달려와 엄마의 수족 역할을 했다. 지인으로부터 전화가 오면 갑자기 죽어가는 목소리로 간신히 살고 있다고 엄살을 피우셨다. 이 이해되지 않는 모든 것은 울 엄마가 원했던 그것을 생각하면 다 이해가 된다. 온 가족을 긴장 속에 몰아넣고 한바탕 난리를 피웠던 엄마는 지금 안정을 되찾았고 몸과 마음이 조금씩 건강해지고 있다. ‘이제 미각도 조금 돌아온 것 같아’라고 수줍게 말씀하셨으니까.
말과 행동에는 욕구가 담겨 있다. ‘사랑과 인정을 받고 싶어’라는 욕구를 내 입으로 직접 내뱉지 못해 우리는 말과 행동 속에 꽁꽁 숨겨두고 누군가가 알아주기를 기다린다. 더 많은 경우는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을 자신도 알아채지 못한 채 속과 다르게 또는 두루뭉술하게 말하기도 한다. 누군가 ‘목이 마르다’고 했을 때 ‘그러게, 점심을 짜게 먹더니’라고 답하지 말자. 목이 마르다는 건 시원한 음료수를 사달라는 얘기다. ‘몸이 아프다’라고 엄마가 얘기했을 때 ‘그러게. 내가 건강검진 꼬박꼬박 받으시라고 그렇게 얘기했잖아’라고 말한 내가 바보다. 그건 ‘나에게 관심을 좀 가져줘’란 뜻이었다.
김용신(CBS 아나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