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기강 무너진 검찰 ‘국정원 수사’ 제대로 하겠나

입력 2013-10-21 18:22

청와대·야당 외압 물리치고, 진실 못 밝히면 특검 불가피

국회 법사위의 서울중앙지검 국정감사 현장은 대한민국 검찰 조직의 기강이 처참하게 무너졌음을 보여줬다. 이런 기관이 과연 각종 대형 사건을 맡아 사정(司正)의 중추적 역할을 수행할 자격이 있는지 의심이 든다.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 사건의 수사 및 의사결정 과정이 도마에 오른 21일 국감에서 수사지휘 책임자인 조영곤 서울중앙지검장과 실무팀장이었던 윤석열 여주지청장은 사사건건 충돌했다. 보고했다-안했다, 승인했다-안했다, 지휘라인이다-아니다, 외압이 있었다-없었다라며 시종 엇갈린 진술을 했다. 얼마나 한심했으면 한 의원이 “검찰이 조폭 같다. 시정잡배보다 못한 행태”라고 질타했을까.

국감장의 분위기만 보면 검찰 수뇌부가 국정원 대선개입 관련 수사에 축소 외압을 행사했다는 의혹이 제기될 만하다. 당초 윤 지청장이 상부에 아무런 보고도 하지 않고 공소장 변경 신청을 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조 지검장에게 몇 차례 상의를 한 것은 사실로 드러났다. 승인을 받았다는 윤 지청장과 정식 보고가 아니었다는 조 지검장의 말이 엇갈리지만 수사 실무팀은 수사를 확대하려 했고, 수뇌부가 이를 제지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국정원 수사와 관련해 법무장관과 검찰총장이 대립해 갈등을 빚은 데다 ‘윤석열 파동’까지 터지면서 검찰은 향후 수사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국정원 직원들이 대선 당시 트위터를 통해 5만5689회 대선개입 활동을 한 사실이 공개되면서 검찰로서는 이 부분을 집중적으로 조사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하지만 현재의 수사라인으로는 어떤 결론을 내더라도 불신을 받게 돼 있다. 민주당은 수사에 적극적이던 검찰총장과 실무팀장을 배제하고 축소·은폐 수사를 했다고 주장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결국 내분에 휩싸인 검찰이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수사팀을 새로 꾸려 심기일전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검찰총장 공백 상태이긴 하지만 대검차장을 중심으로 정치적 외압에 흔들리지 말고 진실을 가려내는 수사에 박차를 가하지 않으면 안 된다. 국가기관의 불법적 선거개입 사실 여부는 어떤 상황에서도 시시비비를 명확하게 가려내야 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검찰은 청와대나 여당의 눈치를 보면 안 되겠지만 야당에 휘둘려서도 안 된다. 오직 국민을 평가의 기준점으로 삼아야 한다. 검찰이 한점 의혹 없이 수사를 마무리하지 못할 경우 특검 수사를 면치 못할 것이다.

국군 사이버사령부 대선개입 의혹 사건도 초반에 철저한 수사가 이뤄져야 한다. 군 검찰이 조사 단계를 넘어 수사를 한다지만 군 자체 수사여서 그 결과가 얼마나 설득력을 얻을 수 있을지 미지수다. 군 검찰은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 사건이 경찰의 축소·은폐 수사로 검찰의 재수사를 받게 됐다는 사실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겠다. 군 자체 수사가 미진할 경우 검찰이나 특검 수사를 받는 수모를 당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