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아웃] 119개 대회만에 챔프 양희영이 쏟아낸 눈물은 자신과의 새도약 약속이었다

입력 2013-10-21 18:04

양희영(20·KB금융그룹)과 서희경(27·진로하이트)의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하나·외환챔피언십 연장전이 진행중이던 20일 오후 인천 스카이72 골프장.

대회 후원사인 하나·외환은행 관계자가 기자실을 돌며 “서희경의 약혼자는 외환은행 직원”이라며 자신들과의 연관성을 강조하고 다녔다. 거액을 투입한 후원사로서는 금융 라이벌사인 KB금융그룹 소속 양희영보다 서희경이 챔피언이 됐으면 하는 희망이 담겨져 있었을 법했다.

하지만 챔피언은 양희영의 차지였고, KB금융그룹 로고가 선명하게 박힌 모자를 쓴 채 김정태 하나금융그룹 회장으로부터 우승 트로피를 받았다. 하나금융그룹 관계자들의 얼굴에 씁쓸한 미소가 엿보였다.

2008년 LPGA무대에 본격 데뷔한 양희영이 6시즌 동안 118개 LPGA 투어대회에서 한번도 우승을 못할 때도 기다려준 후원사가 있었다. LPGA 데뷔 이전인 2006년 아마추어 시절부터 양희영은 삼성으로부터 6년간 후원을 받았다. 고교시절인 2006년 2월 호주 유학중 유럽여자프로골프(LET) 투어 ANZ 마스터스에서 아마추어 자격으로 출전해 당시 세계 최연소 우승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2008년 LET 투어에서 2승을 보탰을 때도 삼성이 뒷받침했다. 박세리를 후원해 세계적인 선수로 키워냈던 삼성이 박세리를 이을 재목으로 양희영을 지목한 것.

하지만 최고의 무대인 LPGA에서 양희영의 존재감은 그리 두드러지지 않았다. 신지애, 최나연에 이어 박인비가 한국 여자프로골프의 대표주자로 나서며 그는 조금씩 잊혀져갔다. 2011년 삼성의 지원이 끊겼지만 그의 잠재력을 눈여겨본 KB금융그룹의 후원을 계속 받을 수 있었다. 그동안 LPGA투어에서 준우승만 4차례하면서 자신감까지 떨어져 지난해에는 골프를 그만두려는 극단적인 생각까지 했다.

하지만 부모의 설득과 자신처럼 우승없이 투어를 떠도는 동료들을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지난 겨울 동계훈련에서 초보 때 했던 ‘타이어 치기’를 다시 시작하며 초심으로 돌아갔다. 또 마음을 내려놓고 자신을 둘러봤다. 양희영은 “한 걸음 물러나 생각해보니 내가 얼마나 행복한 길을 걷고 있는지 알았다”고 술회했다.

우승이 확정되자 1m74, 77㎏의 덩치에도 연신 눈물을 찍어냈던 그는 “우승 순간 고생한 부모님이 가장 생각났다”고 말했다. 그는 카누 대표출신 아버지와 창던지기 대표출신 어머니 사이에서 우월한 스포츠 유전자를 물려받았다.

서완석 국장기자 wssu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