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국정원, SNS 신뢰도 떨어뜨리려 트위터 이용”
입력 2013-10-22 05:28
국가정보원과 국방부 사이버사령부는 지난해 대선을 앞두고 왜 트위터에 접속했을까. 과거 선거에서 트위터의 정치적 파워는 여러 차례 입증됐다. 그래서 수십∼수백명 심리전 요원들로 트위터 이용자 650만명의 여론을 움직여 보려 한 것일까. 과연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했을까.
이 의문을 놓고 국민일보가 20∼21일 의견을 구한 정치·커뮤니케이션 학자들은 여러 해석을 내놨다. 그중엔 “유리한 여론을 조성하려 했던 게 아니라 트위터 여론의 신뢰도를 떨어뜨리려 한 것”이란 분석이 나왔다.
대구가톨릭대 정치외교학과 장우영 교수는 “국정원이 ‘오염효과’를 노리고 트위터 심리전에 나섰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욕설, 비방, 지역감정 조장 등 저급한 언어를 트위터 공간에 쏟아내 트위터를 ‘오염된 공간’으로, 그 여론을 ‘믿지 못할 주장’으로 격하시키려 했다는 것이다.
민주당이 20일 공개한 국정원 직원들의 트위터 글을 보면 ‘박원숭’(박원순 서울시장을 원숭이에 빗댄 말) ‘간찰스’(안철수 후보는 간만 본다는 비하 의미)’ ‘문재인의 주군은 김정일’ 등의 저급한 비유와 지역 비하, 막말 수준의 언어를 직접 올리거나 리트윗했다.
장 교수는 “20∼30대 젊은층이 압도적으로 많은 트위터에는 진보 여론이 강하게 형성돼 있었다”며 “국정원 입장에선 이런 여론을 뒤집기보다 루머나 찌라시성 정보를 유포해 트위터 여론의 이미지를 오염시키는 게 더 효과적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4월 19대 총선에서 트위터 효과를 검증키 위해 트위터 글 650만개를 전수조사한 결과도 공개했다. 장 교수는 “당시 서울시장 선거에서 박 시장보다 나경원 후보의 트위터 노출이 많았지만 부정적 내용이 압도적이었다”며 “국정원과 사이버사령부가 야당 후보를 겨냥해 이런 오염 언어를 쏟아낸 것도 트위터에 부정적 내용이 많을수록 낙선 확률이 높아진다는 ‘나경원 효과’를 고려한 것”이라고 말했다.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신율 교수는 “오프라인에서 정보 소통이 원활하지 않은 국가일수록 트위터의 정치적 역할이 커진다”며 “한국이 딱 좋은 사례”라고 말했다. 우리나라처럼 좌우 갈등이 심하고 상대진영과 밀접한 언론을 서로가 믿지 않는 상황에선 공론장인 트위터가 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신 교수는 국정원의 트위터 대선 개입에 대해선 “어떤 내용의 트윗을 정치 개입으로 보는가는 기준이 상당히 애매하다”고 선을 그었다. 어디까지가 심리전이고, 본격적인 대선 개입인지 모호하다는 뜻이다. 동시에 “북한도 인터넷 심리전을 진행하는 상황에서 대응하는 노력은 필요하다”며 무조건 ‘선거 개입’이라 비판하기는 어렵다고 주장했다.
신 교수는 “트위터는 원래 정치적으로 활용되도록 만들어진 매체가 아니다”며 “너무 개방적인 공간이라 요즘 젊은이들은 오히려 트위터를 많이 사용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IT 업계는 빠르게 변하기 때문에 트위터의 정치적 영향력도 계속 줄어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단국대 언론학과 손태규 교수는 “트위터는 다분히 정치적 미디어”라며 “이번 사태는 국정원이 시대 흐름에 대처한 것”이라고 평했다. 손 교수는 “사실 여부를 따져봐야겠지만 이념적으로 불균형한 트위터에 대해 보수 측이 대응 방안을 세우고 대책을 마련하고자 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고 했다.
그는 트위터를 ‘재앙’이라 지칭했다. 일방적이고 확인되지 않은 정보가 넘쳐나는 무방비 상태의 공간이라는 것이다. 손 교수는 “정보를 거르는 등의 정화 작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트위터 여론 조작을 원천 봉쇄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서울대 사회학과 장덕진 교수는 “페이스북과 달리 트위터는 대부분 모르는 사람과 만나는 공간”이라며 “처음 보는 사람과는 사적인 이야기보다 정치 등 공적인 화제를 논하게 된다”고 분석했다.
그는 정치적 공론장이 부족했던 한국 사회에 트위터가 나타나면서 선거에서 소외된 집단이 제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됐다고 평가했다. 장 교수는 “트위터상에서 집단 지성을 통해 정보가 자체적으로 걸러지는데 최근 특정 세력이 ‘알바’를 동원해 여론을 조작하기 때문에 루머가 나타나는 것”이라며 “이를 실시간으로 걸러내야 하며 이에 대한 기술적 기반도 마련됐다”고 말했다.
박세환 김유나 전수민 기자 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