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형 칼럼] 본회퍼의 래디컬
입력 2013-10-21 17:38
‘래디컬’(Radical·급진적)이란 단어가 요즘 한국 교회에 자주 언급되고 있다. 복음주의의 대부격이었던 고 존 스토트가 자주 썼던 단어인 ‘래디컬 크리스천’은 급진적이고 전복적인 신자다. 복음으로 시대를 거스르고 견인하는 사람이다. 스토트는 ‘제자도’에서 그리스도인은 단순히 ‘크리스천’이 아니라 ‘래디컬한 제자’가 되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지금 미국 내에서는 ‘래디컬 신앙’을 강조하는 목회자들이 각광받고 있다. 릭 워런이나 빌 하이벨스, 조엘 오스틴에 환호했던 사람들은 기능적 목회에 회의를 느끼며 보다 급진적이고 야성적인 목소리를 내고 실천하는 목회자들에게 다가가고 있다. 그래서 ‘크레이지 러브’의 저자 프랜시스 찬, ‘래디컬’의 데이비드 플랫, ‘팬인가, 제자인가’의 카일 아이들먼, ‘복음’의 폴 워셔, ‘살아 있는 신’의 팀 켈러 등 복음의 급진성, 본질을 이야기하는 목회자 저자들의 책이 인기다. 한국에서도 이런 책들은 불황 속에서도 선전하고 있다. 역설적으로 래디컬은 마케팅적인 측면에서 가장 효과적인 개념이기도 하다. 그럼 왜 래디컬인가? 바로 신앙과 삶, 목회와 신학의 심각한 괴리 현상 속에서 기독교가 표류하고 있기 때문이다. ‘래디컬’은 바로 기독교 본질로 돌아가자는 운동의 상징어이기도 하다.
‘래디컬 크리스천’의 개념을 삶으로 살아낸 신자들 가운데 대표격이 바로 독일의 디트리히 본회퍼 목사다. 뛰어난 신학자이자 목사였던 그는 신앙 영역과 정치 영역의 일치를 꾀해 목사의 신분으로 히틀러 암살 음모에 가담했다. 1943년 체포된 그는 1945년 4월 9일 새벽, 39세를 일기로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그리스도를 알고, 부활의 능력을 믿는 믿음 가운데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며, 그리스도처럼 죽은 사람이었다.
본회퍼는 39년의 짧은 삶을 살았지만 신앙을 삶 속에서 완전하게 용해함으로 래디컬 크리스천의 전형이 되었다. 그가 던진 ‘오늘날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누구인가’라는 명제는 21세기 포스트모던 시대를 사는 현대 크리스천들에게도 절절한 주제다.
본회퍼는 말했다. “신자는 ‘나를 따르라’는 그리스도의 부름을 따라나선 자다. 신자라면 ‘이런 부름이 어떤 결단과 단절을 가져오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이 물음을 갖고 홀로 대답을 알고 계신 분에게 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렇게 강조했다. “순종이 없는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가 없는 기독교와 같다. 오직 믿는 자만이 순종하고, 순종하는 자만이 믿는다.” 본회퍼는 인류 역사상 가장 암울했던 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가기 위해 진력했던 하나의 실례이며 완전하지는 않았지만 ‘진짜’ 제자로 살기 위해 힘썼던 사람이었다.
본회퍼가 39년의 생애동안 추구했던 것은 “교회를 교회 되게”라는 명제였다. 그 명제의 실천을 위해 자신을 던졌다. 끊임없이 ‘나는 누구인가’를 묵상하며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나갔다. ‘값싼 은혜’를 배격하고 ‘값비싼 은혜’를 추구하자고 했다. 그에게 값비싼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름이다. 은혜가 값비싼 이유는 예수님 따르기를 촉구하기 때문이다. 본회퍼는 값비싼 은혜를 붙잡기 위해선 생명을 걸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시대 한국 땅에는 교회를 교회 되게 하는 데 생명을 걸 사람들이 필요하다. 예수님은 이 땅의 래디컬 크리스천들에게 말하신다. “너의 그물을 버려라. 이제 나를 따르라!”
국민일보 기독교연구소 소장 t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