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의 날] “유병률 전국1위 B형 간염 예방·치료에 전력”
입력 2013-10-21 17:10
제주지회 송병철 회장
제주도에 거주하는 70대 초반의 고경자(가명) 할머니는 수 십 년간 C형 간염을 앓았다. 할머니는 간염이 가족들에게 전염될까 봐 식사도 따로 하고 그릇이나 수저도 따로 사용했다고 한다. 심지어 손자나 손녀를 안아보거나 뽀뽀하는 것도 피했다고 한다.
어느 날 할머니는 병원에 외래로 내원해 의사로부터 C형간염이 오염된 혈액, 성관계, 오염된 주사 바늘 사용 등에 의하지 않고는 전염되지 않는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됐다. 할머니는 의사로부터 가족들과 식사를 같이 해도 되고 수저를 같이 사용해도 되며, 손주들을 마음대로 안아주고 뽀뽀해도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동안 간염환자로 서럽게 살아왔던 삶을 돌아보며 눈물을 펑펑 흘렸다.
할머니의 생생한 경험담은 비단 남의 가족 이야기만은 아닐 것이다. 이 같은 사례는 간염 환자에 대한 잘못된 인식과 편견이 한 사람의 삶을 얼마나 고달프게 했는지를 여실하게 보여준다.
송병철(제주대학교병원 소화기내과 교수) 대한간학회 제주지회 회장은 “간염에 대한 잘못된 정보로 인해 혼자서 끙끙 고민하다가 병이 악화되는 환자들이 많다”며 “전문의의 도움을 통해 간질환을 올바로 이해하고 정확한 치료법을 숙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간은 ‘침묵의 장기’라고 불리기도 한다. 간세포가 서서히 파괴돼 간 기능이 절반 이하로 저하돼도 특별한 증상이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증상이 나타났을 때는 이미 간이 심각하게 손상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기 때문에 조기 예방을 통해 ‘간 건강’을 지키는 것이 필수다.
특히 B형, C형 간염바이러스 감염은 우리나라 만성 간질환의 대표적인 원인이 된다. 우리나라 B형 간염 바이러스 감염자 중 본인이 B형 간염 바이러스에 감염돼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25%에 불과하다는 통계도 있다. 송병철 교수는 “만성 B형 간염이 오래 지속되면 간경변, 간암으로 발전할 위험이 매우 높으므로 만성 B형 간염 환자에게 정기검진은 필수”라고 말했다.
◇지역마다 특정 간염 유병률 천차만별= 만성간질환(간염·간경화·간세포암)의 3대 원인은 B형 간염, C형 간염, 그리고 음주다. 이 중 우리나라는 B형 간염의 유병률이 매우 높다.
흥미로운 것은 특정 간염 환자 유병률이 지역마다 차이가 있다는 점이다. 제주지역도 예외는 아니다. 송 교수는 “제주지역은 간질환의 역학이 육지 지역과 매우 다른 독특한 양상을 보인다”며 “B형 간염 유병률이 육지보다 높고 C형 간염의 경우 치료에 반응이 좋은 유전자형이 흔한 것이 특징”이라고 말했다. 제주지역은 청정자연환경으로 암 발병률이 낮다. 그러나 제주지역 특성상 B형 간염 유병률이 높고 고위험 음주자가 많아 간암환자 비율은 상대적으로 높다. 실제 제주지역은 B형 간염 유병률(전국 평균 4%·제주도 5.9%)이 전국에서 가장 높았다. 반면에 C형 간염 유병률(전국 평균 0.78%·제주도 0.23%)은 전국에서 가장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각 지역의 특성을 고려한 간질환 치료가 중요하다는 게 송 교수의 설명이다. 올해 5월 창립한 간학회 제주지회도 간질환의 원인, 예방, 적절한 치료 등에 중점을 두고 있으며 제주지역 간질환의 특성을 파악하고 도민을 상대로 홍보하는 데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제주에서도 B형 간염 산모와 신생아 사이에 전염되는 수직감염은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고 했다. 송 교수는 “B형 간염의 경우 산모가 출산 시 백신으로 대부분 수직감염이 예방된다”며 “산부인과에 B형 간염 산모가 내원하는 경우 간 전문의와 수직감염 예방을 위한 상담을 하도록 개원의 및 종합병원 의사들과 유기적으로 협조하고 있다”고 말했다.
만성간질환의 또 다른 원인은 과음이다. 2008년 국민건강영양조사에 따르면 고위험음주율(1주일에 남자인 경우 소주 2병 이상·여자인 경우 1.5병 이상 음주)이 전국 평균 18.6%이나 제주지역은 24.4%로 강원도(28.6%)에 이어 2위였다. 송 교수는 “지나친 음주는 우리 몸에 독”이라고 경고했다.
그렇다면 만성 B형 간염 보유자가 간경변이나 간암에 걸릴 확률은 얼마나 될까. 송 교수는 “나이, 음주, 바이러스 양, 간기능 수치, 가족력 등에 따라 개별적으로 다르다”며 “통상적으로 만성B형간염인 경우 1년에 약 2∼10%에서 간경변증으로 진행되며 간세포암으로의 진행은 1년에 약 1% 정도 된다”고 말했다.
◇B형 간염, 꾸준한 관리가 치료법= B형간염의 경우 완치약은 없다. 다만 항바이러스 제제를 적절히 복용하면 간경변증 및 간세포암의 발병을 예방할 수 있다.
송 교수는 “B형 간염은 평생 관리해야 하는 병”이라며 “고혈압 등 만성질환과 같이 항바이러스제를 꾸준히 복용하면서 바이러스를 억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다만 C형 간염은 완치가 가능하다.
간질환은 조기 발견과 예방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송 교수는 “간암은 40세 이후 발병 확률이 매우 높으므로 이 연령에 도달하면 반드시 6개월 간격의 정기적인 간암 조기 검진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제주지회는
지난 2006년부터 소화기내과 환자를 주로 진료하는 제주지역의 소화기내과 전문의를 중심으로 분기별로 집담회를 개최해 왔다. 2010년 처음으로 제주에서 ‘간의 날’ 행사를 개최하고 2011년 제주간포럼을 개최하면서 여러 전문의들의 열의를 모아 제주지역 간질환 환자들의 진료 편의와 질 향상을 위해 2012년 7월 27일 제주 오션 스위츠 호텔에서 대한간학회 제주지회 발기인 대회를 개최했다. 제주대학교병원 송병철 교수를 회장으로 추대하고 제주한라병원 김영남 교수를 부회장, 제주대학교병원 조유경 교수를 총무로 해 임원진을 구성했다. 2013년 3월 26일 대한간학회 이사회로부터 제주지회 설립 승인을 받았으며 5월 11일 제주대학교병원 국제회의실에서 대한간학회 제주지회 창립총회를 개최했다. 지역 특수성을 고려한 간담도학의 학문적 연구 발전과 회원 상호간의 친목을 도모하며 외국 학술단체 및 국내 학술단체와의 교류를 통해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고 지역에 맞는 간질환 환자의 표준적 치료를 확립하자는 것이 설립 목적이다.
제주=장윤형 쿠키뉴스 기자 vitamin@kuki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