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의 여행] 프리모 레비 ‘멍키스패너’
입력 2013-10-20 19:09
1941년 이탈리아 토리노대학 화학과를 최우등으로 졸업한 프리모 레비(1919∼1987). 그는 제 2차 세계대전 말 파시즘에 저항하는 지하운동에 참여하다 체포당해 아우슈비츠로 이송된다. 45년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아 토리노로 돌아온 그는 페인트 공장에서 관리자로 일하며 작품들을 발표한다. 말하자면 화학자의 일과 작가의 일을 동시에 수행한 것이다. 그러다 75년 회사에서 퇴직하고 글쓰기에만 전념하기로 결심한다. 그 결과 탄생한 작품이 ‘멍키스패너’이다. 이 소설로 78년 이탈리아 최고 권위로 꼽히는 스트레가문학상을 받음으로서 레비는 작가로서의 역량을 공개적으로 인정받는다. 이전 작품이 전적으로 자신의 체험을 토대로 한 것과는 달리 ‘멍키스패너’는 문학적 상상력이 가미된 작품이다.
주인공 리베르티노 파우소네는 떠돌이 조립공이다. 그에게 있어 멍키스패너는 단순히 볼트와 너트를 조이는 공구를 넘어서 그의 실존적 존재 자체를 상징한다. 그는 옛날 기사들이 검을 차듯이 멍키스패너를 허리에 차고 세계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겪은 다양한 모험을 1인칭 화자에게 들려준다.
“위기가 진행될 때 강판에 귀를 대보니 정말 인상적이었어요. 불안정한 내장들의 엄청난 작업 소리가 들렸어요. 나의 내장도 거의 마찬가지로 움직이기 시작할 정도였지만, 체면을 위해 억제했어요. 온도계로 말하자면 물론 사람 입안에 찔러 놓고 열을 재는 그런 온도계가 아니었지요.”(‘봉쇄’에서)
‘봉쇄’ ‘조수’ ‘해양 작업’ ‘구리판 두드리기’ ‘베벨기어’ 등 14개의 흥미로운 에피소드들은 ‘인간과 말’ ‘일과 자유’에 대한 깊은 성찰적 질문을 제시한다. 파우소네가 실존 인물인지 아니면 레비가 창조해낸 허구적 존재인지는 분명치 않다. 하지만 ‘호모 파베르’, 즉 도구를 사용하는 인간으로써 파우소네의 노동을 통한 숭고한 정신적 고양은 레비 자신의 경험에서 비롯된 것임에 틀림없다. 레비 자신도 언어라는 도구를 사용하는 인간, 즉 ‘호모 파베르’이긴 마찬가지가 아닌가. 그는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것은 지상의 행복에 가장 구체적으로, 그리고 훌륭하게 다가가는 것이 된다”고 썼다. 김운찬 옮김.
정철훈 문학전문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