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김정기] 나를 키운 것의 8할은 뭘까

입력 2013-10-20 17:39


눈이 부시게 푸른 가을날에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설악의 단풍 소식과 남하 일정을 ‘초록이 지쳐 단풍드는데’라고 노래한 시인을 떠올리며. 2013년 가을날 오늘은 단 한 번뿐. 순환하는 자연의 시간과는 다르게 그저 가기만 할 뿐인 무상(無常)한 인간의 시간을 함께 상기했다. 자신의 책에 ‘내 몸은 너무 오래 서 있거나 걸어왔다’고 이름 붙인 소설가의 심정을 염탐했다.

방황하는 중학교 2학년 아들의 버릇을 고쳐 달라는 엄마의 부탁을 받고 검도사범은 옷을 벗기고 죽도로 쳐서 사망케 했다는 뉴스에 혀를 찼다.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가 바다로 흘러들었다는 뉴스를 들으며 원전문제를 잘 다스리고 있다고 세계에 공언하는 옆 나라 총리의 거짓말을 성토했다. 그는 전쟁폭력 속에 방치된 여성의 인권을 지켜야 한다고 유엔에서 연설하면서, 그들 국가가 저지른 위안부 범죄에 희생된 우리 할머니들의 절규는 외면하고 있다. 많은 일본 정치인들의 후안무치한 궤변은 인류의 양심과 문명사의 진보를 부정하는 역사의 퇴보라고 단죄했다. 사퇴한 전 검찰총장 건은 친자유전자감식으로, NLL 건은 대화록의 음원을 까는 것으로 끝장을 내야 한다고 결론지었다.

그저 지나가는 인간의 시간

막 사회에 발을 디딘 자녀를 두고서는 동병상련과 동지애를 확인한다. 취업 성공을 축하하고, 사람 때문에 고생할 수 있는 우려를 공유한다. 밤늦도록 묶어두는 대부분 한국 직장의 근무행태와 고질적인 음주문화에 대해서는 비판과 연민을 번갈아 날린다. 이제 그만 집으로 오라는 문자에 ‘직장 동료와 선후배들과 함께 있으니 별수가 없다. 잘 알아서 할 터이니 먼저 주무시라’는 말에는 유사함을 발견하고 허허롭게 웃었다.

그리고 우리가 자식이었을 때의 기억을 더듬었다. 우리들의 엄마들도 자식을 기다리느라 대문 앞을 서성거렸다. 휴대전화도 없던 시절이니 그저 기다리는 수밖에. 나타난 자식을 개선장군처럼 반기며 아버님이 깰세라 조심조심 인도했다. 아들은 다음 날이면 별 감사도 표하지 않고 일상으로 돌아갔다. 자식의 좋은 일에는 나서지 않고, 안 좋은 일에는 스스로 죄인이 되어 안절부절못하던 어머니. 햇살이 눈부시게 반짝이던 가을날에 따뜻한 마음으로 우리를 키워주신 엄마를 함께 그리워했다.

지식보다 따뜻한 마음 있어야

미당 서정주 시인은 1937년에 쓴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인 자화상이라는 시에서 ‘스물 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 할이 바람이다. 세상은 가도 가도 부끄럽기만 하더라’고 적었다. 이제 이 말은 정치인은 정치가, 음악비평가는 비틀스, 독서전문가는 독서가, 운동선수는 올림픽 금메달이 자신을 키운 8할이라는 식으로 자아를 대변한다. 지난 7월 어느 신문은 리코더리스트를 소개하며 그를 키운 것의 8할은 편견이라고 했다. 플루트와 클라리넷 등 다른 관악기에 밀려 오케스트라 편성에 끼지 못하는 리코더의 형편 때문에 악기로서 가능성이 없다는 비하와 ‘네가 리코더 하면 나는 캐스터네츠 한다’는 놀림에 도전했다는 것이다. 몬트리올(1위)과 런던(3위) 국제 리코더 콩쿠르에서 연이어 입상한 연주자는 ‘리코더는 조금만 마음을 주면 누구나 아름다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악기’라면서 ‘음악가는 피자를 최대한 따뜻하게 배달하는 피자배달부’라는 정명훈의 이야기를 명심한다고 했다.

조금만 따뜻한 마음으로 하면 될 일을 왜 못하는 걸까. 따뜻한 가슴이 없이 머리로만 하는 일은 작은 파도에도 와르르 무너지는 모래성이다. 머리의 지식만으로 하는 배달은 공감을 얻지 못한다. 삭막해 가는 세상, 그래도 2014년 가을날은 겨울과 봄과 여름의 날들을 따라 또 올 것이다. 눈부시게 푸른 2014년 가을의 오늘에 우리들은 또 무엇을 얘기하게 될까. 그땐 알 수 있을까. 나를 키운 것의 8할은 무엇인지.

김정기 (한양대 교수·언론정보대학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