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검찰조직의 근간을 지키며 수사해야

입력 2013-10-20 17:39

수사팀 지휘·결재 누락 밝히고 재발방지책 마련하라

국가정보원의 댓글 의혹사건을 수사해온 서울중앙지검 윤석열 특별수사팀장(여주지청장)이 상부 보고나 지휘·결재 없이 수사를 강행하다 직무배제된 사태는 일사불란해야 할 검찰 지휘체계가 또다시 흔들렸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지난 6월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선거법 위반 적용을 놓고 수뇌부와 대립했던 만큼 검찰조직의 근간을 흔드는 이번 사태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윤 팀장은 지난 16일 상부보고 없이 국정원 직원 4명에 대한 압수수색 및 체포영장을 청구하고 영장이 발부되자 다음날 수사팀을 관련자 자택으로 보내 영장을 집행했다. 윤 팀장은 이날 오후에야 이 사실을 조영곤 서울중앙지검장에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건은 국정원이라는 국가기관과 관련된 매우 중요한 사건인데도 지검장은 물론 1차 지휘감독인 이진한 2차장의 지휘·결재를 누락시킨 것은 납득할 수 없는 일이다.

더구나 윤 팀장은 단독으로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한 공소장 변경 신청서까지 법원에 제출했다고 한다. 국정원이라는 국가기관을 상대로 한 수사에서 상부 지휘 없이 영장청구가 이뤄졌다는 것은 가히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현행 검찰청법 7조는 ‘검사는 소속 상급자의 지휘를 받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검찰보고사무규칙 등에도 검사는 공안사건 등 사회이목을 끄는 중요한 사건에 대해 사무보고를 하도록 돼 있다.

이뿐 아니다. 국가정보원직원법 23조에도 수사기관이 소속직원에 대한 수사 사실과 결과를 원장에게 지체 없이 통보하도록 돼있다. 윤 팀장은 대선 관련 글 5만6000여건을 트위터로 전송한 국정원 직원들의 혐의사실을 새로 확인하자 곧바로 영장집행과 공소장 변경을 시도한 것으로 판단된다. 재량권이 있다고 하지만 이것이 상부 보고 내지 국정원 사전통보 절차까지 무시할 만한 긴급사안이었는가는 생각해 볼 문제다. 적법한 수사절차를 통해 얼마든지 대선개입 혐의 사실을 추가입증하고, 오히려 검찰수사의 정당성을 더 알릴 수도 있지 않은가. 특수수사통인 윤 팀장이 이를 모를 리 없을 것이다.

국정원의 대선개입 실상을 분명하게 밝혀야 하지만 검찰조직의 근간을 흔드는 수사방식은 곤란하다. 국민 인권을 다루는 검찰권은 그만큼 신중해야 한다. 그런데도 검찰 내부에서 ‘항명’ ‘거사’라는 말이 나온다고 한다. 검찰 수뇌부에 대한 검사들의 불신이 그만큼 뿌리 깊다는 반증이 아닌가. 사실 ‘상명하복’ ‘검사동일체’ 원칙이 압력이나 청탁의 근거로 남용되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 그동안 지휘권 남용에 대한 누적된 불신의 결과일 것이다.

대검과 법무부가 진상조사에 착수했다니 우선 윤 팀장에 대한 엄정한 조사가 선행돼야 할 것이다. 이와 함께 수사팀의 불신을 초래할 만한 윗선의 부당개입이나 압력 여부도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 이번 사태로 검찰조직의 근간이 흔들려선 결코 안 된다. 정치권도 자신들의 입맛대로 이번 사태를 재단하거나 악용하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