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떠나는 태권도장… 성인 수련생이 대안으로

입력 2013-10-20 17:09


‘위기의 태권도장’ 활로 찾기

태권도 종주국에 비상이 걸렸다. 경영난에 허덕이던 태권도장들이 잇달아 문을 닫으면서 등록 도장수가 지난해를 정점으로 감소세로 들어섰다. 등록 도장이 줄어든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이런 현상은 출산율 저하에 따른 어린이 수련생 감소와 경제난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탓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에 따라 매년 쏟아져 나오는 태권도 관련 학과 졸업생의 취업난도 심화되고 있다. 전문가들이 내놓는 대안은 어린이 대신 성인 수련생을 늘리는 방안이다. 하지만 성인의 태권도 수련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개선되지 않는 한 이마저도 쉽지 않을 전망이다.

◇감소하는 태권도장=20일 현재 대한태권도협회에 등록된 전국 태권도장은 8765개다. 하지만 등록이 강제 사항이 아니어서 전국 태권도 도장은 1만2500여개로 추산되고 있다.

도장은 2012년까지 줄곧 증가세를 보였다. 1994년 3469개였던 태권도장은 2000년 7000개를 넘어섰고 2006년에는 처음 8000개를 돌파했다(8139개). 이후 국제경제 위기상황에도 소폭 증가세를 보이던 도장은 지난해 처음 9000개를 넘어서며 정점(9189개)을 찍었다. 하지만 올들어 등록도장이 4.6%가 빠지면서 8765개로 줄어들었다. 협회는 성장이 둔화되는 국내 경기를 감안해 도장의 감소세는 한동안 지속되리라고 전망하고 있다.

도장의 감소는 오래전부터 예견돼온 수순이었다. 출산율 저하로 어린이 수련생을 마케팅 타깃으로 삼아온 태권도계로서는 올 것이 온 셈이다. 어린이 관원수가 줄어들면서 도장 한 곳당 평균 수련생 수가 100명 정도에서 70명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게다가 한해 전국 61개 태권도 관련 학과에서 배출되는 사범 지망생은 2500명에 달하면서 이들도 취업난에 시달리게 됐다. 이같은 수급 불균형으로 인해 곳곳에서 새로운 대책마련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왜 어린이만 태권도를 하게 됐나=국내 사설 체육관 가운데 마케팅쪽으로 가장 성공한 모델은 바로 태권도장이었다. 태권도가 스포츠라는 기반 위에 인성교육까지 담당하면서 학부모들이 초등학생을 태권도장으로 보냈다. 심지어 유치원부에서도 태권도를 배우게 되면서 점차 입문 연령이 낮아져 가는 추세였다. 지난 30여년간 태권도장은 이런 흐름속에서 양적 성장을 거듭했다.

태권도장은 주요 고객인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수련 프로그램을 고안해냈다. 엄한 규율과 혹독한 신체단련이라는 전통적인 무도 훈련방식에서 벗어나 어린이 신체발육에 맞는 스포츠 프로그램으로 조금씩 전환했다. 심지어 저학년들에게는 놀이에 가까운 프로그램이 적용되면서 정통 무도태권도와는 차츰 거리가 멀어졌다. 그래도 인내와 절제, 예절 등 학교 교육으로 채워지지 않는 인성교육을 태권도가 담당한다는 인식 속에 그 존재감을 인정받았다.

문제는 초등학생들이 중학생만 되면 일제히 도장을 떠난다는 데 있다. 이는 중학생부터 입시경쟁으로 내모는 사회 환경 탓이다. 또 다른 이유로 어린이 건강과 놀이에 치중했던 수련 프로그램에 심각한 문제가 있지 않느냐는 자성론도 있다. 한때 태권도장에서 축구와 농구 프로그램 등을 병행하면서 스스로 태권도의 전문성을 내팽개친 것이 부메랑이 돼 태권도의 정체성 유지에 방해가 됐다는 얘기다.

수년째 도장 지원사업을 펼쳐온 대한태권도협회 이종천 책임연구원은 “태권도장이 수련생의 건강과 놀이, 인성 등 모든 것을 다루면서 컨텐츠는 다양화됐다”면서 “하지만 태권도에만 충실한 방향으로 가지 않으면 소비자들은 떠날 수 밖에 없다. 지금은 전문화 시대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성인수련생이 태권도장의 대안이 될까=도장과 어린이 수련생이 감소하면서 성인을 수련생으로 끌어들이려는 노력이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어린이 수련생보다 훨씬 많은 자원에다 건강에 대해 관심이 높아진 연령층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해외 태권도장은 성인 수련생이 압도적으로 많다.

성인의 태권도 수련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1950∼60년대는 성인 수련생 위주로 도장이 운영됐었다. 최근 들어서도 몇몇 지자체 복지관을 중심으로 ‘실버 태권도’가 명맥을 유지해왔다. 노인들에게 쉬운 동작의 품새와 태권도를 기초로 한 에어로빅을 가르치는 프로그램이다. 실제로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노인들 가운데는 암을 극복한 사례도 있을 만큼 건강 증진에 도움이 됐다고 한다. 성인 위주의 수련 프로그램을 가동해 성인부를 적극 육성하는 도장도 점차 생기고 있다. 경기도 일산의 김재훈 도장과 서울 갈월동의 아리랑 도장이 대표적이다. 특히 아리랑 도장은 성인들만 회원으로 가입시키는 유일한 도장이다. 이들 도장은 헬스클럽에 버금가는 깨끗한 시설과 마니아 위주의 수련생을 확보하면서 특히 국내 외국인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아리랑 도장의 진상은 사범은 “한국에서 어른들이 태권도를 수련한다고 하면 아직도 이상하게 보는 시선이 분명히 있다”면서 “성인용 프로그램도 중요하지만 수련시간에 어린이들과 섞이지 않는 것만으로도 성인 태권도의 전망이 밝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성인의 태권도 수련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해소하기 위해 매년 인사동을 찾아 태권도시범을 보인다”면서 “넥타이 부대들이 태권도 도장을 찾는 날이 반드시 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글·사진=서완석 국장기자 wssu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