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武道’ 원형 온전히 간직… 성인부 활성화 모범 사례 일산 ‘김재훈 태권도장’
입력 2013-10-20 17:10
국내에서 태권도 성인부가 가장 활성화돼 있다는 김재훈(사진) 태권도장(경기도 고양시 대화동)은 입구부터가 여느 도장과는 달랐다. 처음부터 성인 대상 태권도장을 염두에 두고 시설에 많은 투자를 했기 때문이다. 주위 흔히 볼 수 있는 어린이 대상 도장은 면적이 100∼165㎡에 불과하나 825㎡ 규모의 널찍한 공간에다 조명시설이 고급 헬스클럽을 방불케 했다.
김재훈 도장에는 현재 120명 남짓한 성인들이 하루 5부로 나뉘어 태권도를 수련한다. 성인부만 놓고 보면 국내에서 가장 큰 도장이다. 물론 소문을 듣고 찾아온 어린이 수련생도 그만한 숫자가 수련중이다. 미국 동부 보스턴에 총본관을 둔 김재훈 도장은 2004년 한국에 첫 성인 태권도장을 개설했다. 어린이 위주의 국내 도장 문화를 감안하면 그의 도전은 무모해보였다. 처음 몇 년간은 60∼70명 정도로 겨우 명맥을 유지하는 수준이었지만 최근 들어 100명이 넘어서면서 정착단계에 이르렀다. 이들 중 외국인 수련생도 20여명이 있다.
타 도장과 다른 김재훈 도장만의 특징은 무도태권도의 원형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는 점이다. 성인들의 심신단련에 목표를 두면서도 20∼60대에 이르는 다양한 성인 연령층에 맞는 수련 프로그램을 갖고 있었다. 어린이 대상 놀이 프로그램에만 집중해온 국내 다른 도장과는 확연히 달랐다. 어린이 위주였던 국내 도장이 1950∼60년대 성인 프로그램을 잊은 반면 미국에서는 그 원형을 온전히 보전해온 때문이다.
또한 컨텐츠가 타 도장에 비해 다양했다. 기존 국기원 품새 외에 김재훈 도장만의 창헌(최홍희 장군의 호)류 품새도 함께 익혀야 했다. 한 단 올라갈 때 한가지 품새만 익히면 되는 기존 도장과 달리 동선이 2배가 되는 창헌류 품새를 2가지 더 익혀야 한다. 외국인 수련생을 위해 간간히 영어가 쓰이는 것과 복싱 펀치가 기본기에 들어있는 것도 이색적이다.
3년 가까이 수련중이라는 신혜영(44·여)씨는 “처음에는 아줌마가 태권도를 배운다는 것을 주위에서 신기해하는 정도였다”면서 “다른 도장에는 가보지 않았지만 여긴 새로 익혀야 하는 것들이 많아 쉴 틈이 없다”고 말했다. 2년7개월간 다니고 있다는 김성훈(43)씨는 “40세가 넘어 건강을 생각할 즈음 우연히 태권도를 접하게 됐다”면서 “골프 등 온갖 운동을 다해봤지만 전신을 쓰는 태권도가 건강에는 최고”라며 흐르는 땀을 연신 훔쳐냈다.
김재훈 도장의 기원은 39년전인 197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명문 MIT 재학생이던 김재훈 총관장이 미국 보스턴에 도장을 설립한 것이 시초다. 김 관장은 MIT에서 태권도 동아리활동을 하던 중 당시 캐나다 망명생활을 하던 최홍희씨를 만나게 된다. 군 출신인 최씨는 1955년 ‘태권도’란 용어를 최초로 만든 원로 태권도인. 초대 대한태권도협회장을 역임한 그는 군사정부와의 알력 때문에 캐나다로 망명을 떠났고, 이후 북한으로 건너가 국제태권도연맹(ITF)을 창설한 장본인이다. 최씨로부터 ‘무도태권도’의 진수를 전수받은 김 관장은 대학 등록금을 ‘유용’해 도장을 개설했다고 한다. 현재도 그 도장은 김재훈 태권도장의 총본관이다. 김재훈 도장은 미국을 비롯, 한국 중국 싱가포르 등에 16개의 지관을 갖고 있다. 일산 도장도 그중의 하나. 국내에서는 서울, 대구, 창원, 용인 등지에 시범도장을 운영중이다.
미국에서 주로 활동하는 김 관장의 이력도 흥밋거리다. MIT와 하버드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뒤 굴지의 기업인 GE의 아시아·태평양 지역 부사장으로 있던 그는 1992년 모든 것을 내려놓고 태권도로 돌아왔다. 당시 연봉 4억원에도 전혀 행복하지 않았다던 그는 태권도 수련과 제자 훈련에서 진정 행복을 되찾았다고 한다.
글·사진=서완석 국장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