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을 넘어 미래한국으로-(3부) 한국, 새로운 패러다임을 찾는다] (29) 반성할 줄 아는 나라
입력 2013-10-20 17:43
베를린 도심에 홀로코스트 추모비… ‘반성’ 일상화
베를린 시내 브란덴부르크 문. 통독의 상징인 이 문에서 ‘베를린의 허파’인 티어가르텐 공원을 끼고 10여분 걸었을 때였다. 갑자기 관처럼 생긴 수천개 회색 콘크리트 직육면체가 격자를 이루며 도열해 있는 넓은 공간이 나타났다. 거대한 공동묘지를 연상시켰다.
지난달 10일 오전 찾은 ‘홀로코스트 추모비’는 이렇듯 도심 속 대로변에 위치해 있었다. 추모비 주변으론 아파트와 은행 등 상업용 건물이 내려다보듯 둘러서 있다. 관 같은 콘크리트에 걸터앉아 생각에 잠겨 있는 시민, 원을 그리며 모여 가이드 설명을 듣는 단체 관람객들…. 모두의 얼굴엔 무거운 상념이 흘렀다.
◇수천개 관이 널려 있는 듯=2005년 건립된 이 추모비는 미국 건축가 피터 아이젠만(Peter Eisenman)이 설계했다. 1만9000㎡(5700평), 약간 경사진 드넓은 공간을 채운 콘크리트는 총 2711개. 폭(1m)과 길이(2.4m)는 모두 같고 높이만 다른데, 높은 건 4.8m나 된다. 특히 중간지대쯤 높이 솟은 콘크리트 숲 사이를 걸으면 갑자기 현기증이 난다. 공간 가득 뭔지 모를 불안감과 무거운 공기가 흐른다. 의도된 무거움, 의도된 불편함이 이곳에 있는 것이다.
옛 서독 지역 라이란트팔츠 주 레마겐에서 온 안드리아스 베커씨는 “처음 와 본다. 뭔가 억누르는 듯한 느낌이 든다”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 그는 고교 졸업 후 제빵사로 일하는 아들과 왔다고 했다.
티어가르텐 숲 속에는 유럽 집시를 위한 추모 공간도 있다. 여기 형식도 독특하다. 물을 가득 채운 큰 원이 있고, 그 중앙에 삼각형의 헌화대가 있다. 사람들은 고요한 수면에 비친 주변의 자연과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즉, 응시를 통해 희생자를 생각하고 역사적 과오를 돌아보는 듯했다.
이들 추모 공간은 모두 베를린 중심지에 위치한다. 유학생 박정롱(훔볼트대 신학과 박사과정 수료)씨는 “베를린 사람들이 매일 출퇴근하는 길에 있다. 그것도 도심 금싸라기 땅에 있다는 게 놀랍다”고 말했다.
◇건축물엔 칼로 벤 듯한 상처가=건축물이 말을 건네고 사람을 울게 만든다. 2001년 개관한 유대인 박물관이 그렇다. 독일에서 조상 대대로 살아오다 나치의 박해를 받고 이주해야 했던 유대인들의 역사와 문화를 기록하기 위해 세운 이 박물관은 유대계 미국인 다니엘 리베스킨트(Daniel Libeskind·1946∼)의 작품. 충격을 담은 듯한 지그재그 형태의 건물, 세월과 함께 부식되기를 의도한 아연과 티타늄으로 된 외장, 칼로 벤 상처처럼 건축물 곳곳에 비스듬히 난 가늘고 긴 창문 등 외관부터 많은 걸 함축한다. 전시품들도 상징성을 띠고 있다. 대표적인 게 유대인 예술가 카디슈만(M Kadischman·1932∼)의 설치 작품 ‘낙엽’. 사람 얼굴 형상을 한 수많은 철제 조각이 바닥에 깔렸다. 관람객들이 낙엽더미처럼 쌓인 그 위를 걸으면 ‘쩔그렁쩔그렁’ 소리가 난다. 마치 절규 같다. 건축은 단순히 기술에 그치는 게 아니라 역사와 전통에 바탕을 둔 인문학인 것이다.
◇예술의 형식에도 반성을 담는다=충혼탑마냥 우뚝 솟은 탑, 혹은 근사한 조형물을 건립해서는 과거의 잘못에 대한 반성을 담을 수 없다. 홀로코스트 추모비를 보며 드는 생각은 그런 것이었다. 중심가 티어가르텐 공원 인근에 있는 전승기념탑과 비교하면 확연히 차이를 느낄 수 있다. 1873년 프로이센이 덴마크, 오스트리아, 프랑스 등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해 세운 이 탑은 수직의 기둥 위에 승리의 여신상이 황금색으로 도금되어 있다.
뻔한 형식을 탈피하려는 노력은 독일의 과거사 반성 작업이 얼마나 철저한지를 또 다른 각도에서 보여준다. 이는 독일 정부뿐 아니라 예술가들도 이런 고민을 공유하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1994년 독일 정부가 국책사업으로 ‘홀로코스트 기념물’ 공모전을 했을 때 독일 전위예술가 호르스트 호아이젤(Horst Hoheisel)의 제안은 엉뚱했다. “브란덴부르크 문을 폭파시키자. 돌덩어리는 가루로 날려버리고 빈터를 석판으로 덮어버리자”는 것이었다.
전진성 부산교육대 사회교육과 교수는 “비록 낙선했지만 호아이젤의 아이디어에는 전형적인 형식이나 그럴듯한 조형물을 건립해선 반성을 제대로 담을 수 없다는 예술가들의 문제의식이 깔려 있다”며 “통상의 기념비 형식이 또 다른 국가주의 이미지로 잘못 비칠 수도 있음을 정부도, 예술가도 우려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하르부르크에 있는 ‘반파시즘 기념비’는 시간이 흐르면 점점 땅속으로 꺼져 사라지도록 설계되어 있다”고 소개했다.
베를린=글·사진 손영옥 문화생활부장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