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을 넘어 미래한국으로] “전쟁 참상 기억하자” 폭격맞은 교회 그대로 보존
입력 2013-10-20 17:33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3년 11월 23일. 베를린 시민들은 연합군의 공습에 벌벌 떨었다. 곳곳의 건물이 무너졌다. 19세기 말 독일의 첫 황제 빌헬름 1세 시대의 영화를 기리기 위해 건축된 신(新) 로마네스크 양식의 카이저빌헬름 교회도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첨탑과 예배당 입구만 간신히 살아남았을 뿐이다. 교회는 팔 잘린 몰골이 됐다. 꼭대기 종루 부분도 가장자리만 남아 ‘깨진 이빨’처럼 보였다.
지난 9월 12일 동물원역(Zoologischer Garten) 인근 카이저빌헬름 교회를 찾았다. 옛 교회는 흰색 가림막이 쳐진 채 보수 공사가 한창이었다. 1961년 유명 건축가 에곤 아이어만(Egon Eiermann·1904∼1970)이 완공한 신관 4동이 호위하듯 서 있었다. 특히 육각형의 종탑과 팔각형의 신예배당은 독특한 벌집 모양 외관으로 모더니즘 건축의 심벌로 통한다. 이곳은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현장이다.
독일은 전통을 존중하는 정신이 유독 강하다. 과거가 고통을 주는 트라우마, 흉터 같은 상처일지라도 고스란히 보존한다. 여기에는 과거사에 대한 반성, 다시는 전쟁을 되풀이하고 싶지 않다는 평화에 대한 염원이 담겨 있다. 베를린의 카이저빌헬름 교회가 대표적인 경우다. 교회가 평화를 지향하는 의미를 담은 역사적 유적으로 기능하는 것이다.
그런데 전쟁의 참상을 간직한 이 옛 교회는 사라질 뻔한 위기를 겪었다. 아이어만은 원래 교회 재건축 공모전에 당선됐을 때 붕괴 위험을 안고 있던 옛 교회를 철거하려고 했다. 이걸 막은 건 시민들이다. 고통스런 전쟁을 기억하게 하고 이것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경고하는 상징으로 남겨야 한다는 여론이 팽배했던 것이다. 그렇게 살아남은 옛 교회는 새 교회 건물과 함께 독일의 문화재로 지정되었다.
100년 이상의 풍상을 견디며 전쟁의 경고등 같은 역할을 해온 이 교회는 다시 한번 시민들의 덕을 보고 있다. 2007년, 교회 건물의 노후화와 그 밑을 지나는 지하철의 영향으로 무너질 위기에 처한 문화재를 고발하는 언론의 지적을 계기로 대대적인 모금 캠페인이 벌어진 것이다. ‘탑을 구하라!’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시민들이 팔을 걷어붙이자 베를린 시, 연방정부 등이 거들었다. 그렇게 모은 420만 유로로 2012년 초부터 보수공사가 시작됐다. 공사는 막바지에 이르러 올 연말이면 가림막이 완전히 걷혀 옛 교회가 활력을 찾은 모습을 드러낼 예정이다.
시민의 힘이 전쟁의 상흔을 지켜낸 더 극적인 예는 옛 동독 지역인 드레스덴의 성모교회(Frauenkirche)다. 제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로 치닫던 1945년 2월 13일 밤. 미국과 영국 공군은 이틀간 드레스덴에 융단폭격을 퍼부었다. 최소 6만명 이상의 시민이 사망했고, ‘엘베강의 피렌체’는 초토화됐다. 성모교회는 앙상한 벽체 조각만 조금 남은 채 폐허가 됐다.
구 동독 시절 교회는 잔해더미 그대로 방치됐다가 통독 이후 복원 시도가 본격화됐다. 논란은 있었다. 복원이 반전 기념물로서의 의미를 약화시킨다며 반대하는 여론도 있었다. 그런데 복원된 교회는 기존의 반전 이미지에 더해 화해의 새 상징을 만들어냈다. 복원 과정에서는 독일인뿐 아니라 세계 20개국에서 성금을 보탰다. 돔 꼭대기에 올려놓은 황금색 십자가는 영국의 장인 앨런 스미스가 제작했다. 그는 드레스덴을 공습했던 조종사의 아들이었다.
참혹했던 전쟁의 기억을 간직한 잔해에서 수습한 석재 약 3800개가 재사용됐다. 돌들은 불에 타 검게 그을린 흔적 그대로 쌓아올려졌다. 2005년 10월, 유럽 최대 돔 지붕의 하나로 ‘돌로 된 종’이라는 별칭을 가진 성모교회는 다시 완벽한 자태를 세상에 드러냈다. 전쟁 반대, 화해와 공존을 희망하는 유럽인의 아이콘으로 재탄생한 순간이었다.
지난달 13일 이곳을 찾았을 때 날씨는 더없이 화창했다. 각지에서 온 여행객으로 교회 주변에는 활기가 넘쳐났다. 성모교회는 크림색 대리석으로 바로크의 당당함을 한껏 살려낸 전체적인 외관이 멋졌는데, 북쪽 외벽 한 귀퉁이에 옛 석재를 활용한 검은 벽이 가을 햇살 속에 흉터처럼 선명했다. 1736년 막 완공되었을 때 바흐가 작센 왕을 위해 오르간 연주를 했던 성모교회는 화해와 공존, 과거에 대한 반성의 마음을 각국에서 온 관광객들에게 전하고 있었다.
베를린·드레스덴=글·사진 손영옥 문화생활부장 yosohn@kmib.co.kr
■ 자문해주신 분들
△귄터 콜로트치에 베를린 주 문화담당 대변인 △우베 노이매르커 유대인희생자기념재단 사무국장 △외르크 슈페르너 쾰른 대성당 건축담당 돔바우 휘테 △볼프강 자이펜 베를린국립예술대 교수 △크리스티안 볼프 라이프치히 토마스 교회 목사 △볼프강 이멘하우젠 갤러리 무터 푸라제 대표 △박종화 국민문화재단 이사장 △말테 리노 한국 루터대 신학과 교수 △김재신 주독일 대사 △윤종석 주독일 한국문화원장 △추태화 안양대 기독교문화학과 교수 △맹완호 독일문화원 문화협력관 △김윤정 뮌헨대 문화학 박사과정 수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