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얼굴
입력 2013-10-20 17:20
사도행전 6장 10∼15절
정태봉님이 쓴 ‘나의 또 다른 얼굴’이라는 글의 일부입니다.
‘당신의 영혼 얼굴을 보고 싶거든 오라는 초대를 받고 전시회에 갔습니다. 여러 작품의 감상을 끝내고 나가는 출구에 큰 거울이 있었고 그 거울에 자기 모습이 비쳐졌습니다. 그 거울 밑에는 ‘당신을 보고 있는 신(하나님)의 표정’이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어떻습니까. 지금 내 모습이 하나님께서 보고 있는 하나님의 표정이라고 할 만합니까. 성경에는 얼굴이라는 말이 많이 나오는데 오늘 말씀에는 스데반을 ‘천사의 얼굴’과 같은 것으로 증언하고 있습니다. 과연 천사의 얼굴이 가능할까요? 더구나 반대, 거부, 고소, 체포, 매수, 협박, 거짓 증언이 자신에게 날아들고 있는 현장에서 어떻게 천사의 얼굴을 할 수 있습니까. 스데반의 천사의 얼굴이라는 것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갖게 하고 도전을 주는 것일까요. 사도행전에 나타난 그의 행적 속에서 정리해보면 5가지 정도가 나타납니다.
첫째, 어떤 상황 속에서도 두려움, 슬픔, 분노를 나타내지 않는 평온의 모습입니다. 둘째, 자신의 할 일을 목숨 걸고 다하는 만족한 모습입니다. 셋째, 아래를 보지 않고 위를 보는 모습입니다. 넷째, 주님의 자취를 보는 모습, 즉 십자가를 통한 승리를 보는 모습입니다. 마지막으로 용서하는 모습입니다. 이 모습들이 바로 ‘천사의 얼굴’이 아닐까요.
야곱은 자신을 용서한 형 에서를 보면서 “형님의 얼굴을 보니 하나님 얼굴을 뵈옵는 것”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에게서 볼 수 있는 천사의 얼굴은 용서, 용납, 이해, 인정, 격려를 주는 얼굴이어야 합니다. 스데반의 얼굴에서 우리가 더 크게 도전받아야 할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 성령이 충만하고, 믿음이 충만하면 당연히 천사의 얼굴이어야 합니다. 둘째, 우리 삶의 한복판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세상 사람들에게 천사의 얼굴로 증언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셋째,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합니다. 성령과 지혜와 믿음이 충만한 ‘천사의 얼굴’로 존재해야 하는 책임입니다.
동양, 특히 한국은 얼굴을 중요시합니다. 그래서 잘못했을 때 “얼굴을 들 수 없다” “얼굴을 내밀 수 있겠느냐”라는 체면문화가 자리 잡게 된 것은 아닌지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숙제는 명료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의 얼굴, 교회 얼굴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에 답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과연 내 얼굴을 어떻게 보실까’에 대해 우리는 응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동시에 우리는 어떻게 주님의 얼굴을 나타낼 수 있을지에 집중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기도하는 얼굴, 찬양하는 얼굴, 사랑을 나누는 얼굴, 은혜 충만한 얼굴을 가진 자로 어떤 환경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일그러지지 않는 천사의 얼굴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우리가 많이 부족하기에 주님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십자가 사랑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그 영광과 승리를 바라보면서 천사의 얼굴로 책임지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럴 때 주님은 우리의 얼굴, 교회의 얼굴을 빛나게 하시고 면류관을 쓰게 하실 것입니다. 한국 교회와 성도들 모두 천사의 얼굴로 하나님의 얼굴을 보여줍시다.
정영택 경주제일교회 목사(예장통합 부총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