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나들 (4) 간경화에도 5집 앨범… 기도끝에 ‘일기예보’ 해체를

입력 2013-10-20 17:20


놀랐다. 나부터 놀랐다. 고집스럽고 까칠하고 거만했던 내가 예수님을 믿고 한순간에 달라졌다. 가장 많이 놀란 사람은 ‘일기예보’의 다른 멤버 강현민이었다. 그는 나의 변화를 신기하게 바라봤다. “네 소프트웨어가 완전히 바뀐 것 같아.”

주변 사람들도 놀랐다. “갑자기 저렇게 달라질 수 있나?” “나들 맞아?” “쟤, 미친 것 아냐?” 이런 반응이었다. “나 교회 다니잖아” “예수 믿으면 이렇게 돼”라며 이들을 전도했어야 했는데, 그때는 “예수님 믿고 이렇게 됐다”고 하면 오히려 예수님을 이상하게, 나쁘게 볼 것 같았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교회에 다니게 됐다”고만 말했다.

4집 활동 이후 현민이는 솔로 활동을 시작하고 나는 간경화 때문에 쉬기로 했다. 문제가 생겼다. 회사와의 계약이 5집까지였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5집 앨범을 제작하기 위해 다시 뭉쳐야 했다.

현민이도 예수님을 믿길 간절히 바랐다. 그래서 함께 활동하면서 예수님을 믿으면 어떻게 달라지는지 보여주고 싶었다. 내게서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길 바랐다.

현민이가 의견을 내면 적극 동의하고 최선을 다해 섬겼다. 간경화로 제약이 있었지만 마지막 앨범이니만큼 잘 마무리하려고 애썼다. 그러자 관계가 무척 좋아졌다. 이전에는 이런저런 갈등이 있었다. 내가 문제였던 것이다. 내가 고집스럽고 까칠하고 거만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1년이 지났다. 현민이는 내게 일기예보 활동을 더 하자고 제안했다.

“5집까지 활동한다는 전속계약도 끝났으니 우리가 직접 앨범을 제작하는 것은 어때? 그동안은 회사만 좋은 일 시켰잖아. 6집도 잘되면 큰돈을 벌 거야.”

뜻밖의 제안이었다. 당시에는 앨범을 많이 팔아도 가수에게 남는 돈은 극히 일부였다. 수익 대부분이 소속사로 돌아갔다. 현민이도 내 건강상태를 알았다. 그는 무리하게 공연하지 않고 음반만 제작해도 충분히 돈을 벌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당황스러웠다. 아픈 사람에게 쉬지 말고 일하자는 것 같아 서운했다. 한편으론 감사했다. 솔로활동 계획을 접고 함께하자는 것은 내가 같이 일해도 좋을 만큼 괜찮은 사람이 됐다는 이야기였다.

다음 앨범을 제작하자는 현민이의 의지는 확고했다. 고민이 됐다. 특히 기독교인으로서 어떻게 결정하는 게 옳은 일인지 고민했다. 친구를 위해 건강을 포기해야 하는지, 건강을 위해 친구를 포기해야 하는지.

친구를 잃지 않으면서 건강 회복을 위해 쉬고 싶었다. 친구는 내 결정을 기다리고 있었고 나는 지혜로운 결정을 내리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매달렸다.

어느 날 성경을 묵상하다 해답을 얻었다. 고린도후서 6장 14절 말씀이었다.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이 말씀이 강렬하게 다가왔다. 공동 투자해 음반을 제작하지 말라는 사인이라고 확신했다. 말씀에 의지해 결정하고 나니 마음이 편했다. 하지만 비기독교인인 현민이에게 이런 상황을 설명하기란 쉽지 않았다. 또 며칠을 고민했다. 어렵게 이야기를 꺼냈다.

“현민아, 미안해. 나는 함께하지 못할 것 같아. 무엇보다 내 삶의 목표가 바뀌었어. 음반을 제작해 큰돈을 버는 게 내겐 중요하지 않아. 그냥 각자의 길을 가는 게 좋겠어.”

나는 연신 미안하다고 했다. 이 거절로 현민이와의 관계가 나빠질까봐 걱정했다. 상심이 컸겠지만 현민이는 내 결정을 존중했다. 그렇게 일기예보는 5집을 끝으로 해체됐다. 이후 기나긴 투병 생활을 시작했다.

정리=전병선 기자 junb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