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이 흘렀다… 한센인들 얼굴에 미소가 흘렀다

입력 2013-10-18 19:02


CTS 교향악단 ‘중국의 소록도’ 상뤄 인애원서 친선 음악회

지난 17일 오후. 중국 시안에서 버스로 3시간쯤 떨어진 상뤄 인애원에 낯선 이방인들이 찾아왔다. 이곳은 한센병 치료·요양기관이다. 검은 정장 차림에 바이올린, 첼로, 호른, 콘트라베이스 등의 악기를 들고 온 이들은 ‘나 같은 죄인 살리신’을 비롯한 성가곡과 엘가의 ‘위풍당당행진곡’, 하이든의 ‘트럼펫 협주곡’ 등을 연주했다. 도심과 거리가 먼 산중턱에 있어 인적이 드문 이곳에 악기소리가 흘러나오자 한센병 환우들이 삼삼오오 마당에 모였다. 다리를 잃고 휠체어에 의지한 할머니, 한쪽 눈을 잃은 할아버지 등 한센병 후유증으로 거동이 불편한 관객 80여명은 인애원에서 오랜만에 펼쳐진 아름다운 선율에 푹 빠져들었다.

영혼을 울리는 치유의 음악, 찬양

이날 중국 한센병 환우에게 찬양과 클래식 음악을 선물한 이들은 CTS기독교TV교향악단(단장 동형춘·CTS교향악단) 단원들이다. 2005년 설립된 교향악단은 병이나 장애로 몸을 움직이지 못하거나 문화시설이 없어 클래식을 접하기 힘든 국내외 문화소외계층에게 ‘찾아가는 공연’을 꾸준히 해 왔다. 이번 공연은 외과전문의로 한센인 치료를 위해 2010년 인애원에 정착한 김상현(64) 원장의 초청으로 이뤄졌다. CTS교향악단의 활동을 눈여겨본 김 원장이 평소 친분이 있던 동형춘(67) 단장에게 평생 문화적 혜택을 거의 누리지 못한 한센인에게 공연을 해 줄 것을 요청한 게 계기가 됐다.

CTS교향악단은 이번 공연에 오케스트라로 편곡한 찬양 여러 곡을 프로그램에 포함했다. 찬양이 병마의 고통뿐 아니라 차별의 시선을 견뎌내야 하는 한센인의 마음을 위로하는데 적합하다고 판단해서다. 동 단장은 “음악은 언어의 장벽을 뛰어넘고, 복음은 기적을 만들어낸다. 따라서 이 둘이 합쳐진 찬양이 한센인의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데 가장 적합하다고 봤다”고 선곡 이유를 설명했다.

관객 반응은 호의적이었다. 2년 동안 인애원에 살며 자원봉사를 한 왕챠오밍(43)씨는 “음악에 대해선 문외한이나 악기연주가 매우 듣기 좋았다. 특히 ‘나 같은 죄인 살리신’이 가장 인상 깊었다”고 말했다. 이곳에서 13년간 지낸 장춘강(74)씨 역시 “공연을 듣고 마음이 평안하고 행복해졌다. 마치 내 문화 수준이 한 단계 더 높아진 느낌”이라며 “음악을 들을 수 있게 해준 원장님께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고 거듭 말했다.

김 원장은 “공자의 논어에 ‘멀리서 친구가 찾아오는 것만큼 기쁜 일이 어디 있느냐’는 말처럼 동 단장이 이끄는 한국의 CTS교향악단이 이곳에 와 참 좋다”며 “평소 사람의 왕래가 거의 없는 중국 오지에서 아름다운 음악을 들려준 이들에게 매우 감사하다”고 말했다.

음악으로 다지는 ‘한중우호’

공연은 후반으로 갈수록 열기가 뜨거웠다. 한국에서 온 교향악단의 공연을 보러 지역정부 관계자와 인근의 정신병원 환우들까지 속속 인애원을 찾아왔다. CTS교향악단의 연주 이후엔 중국 공연 단체가 무대에 올라 가곡과 가요를 불러 흥겨운 분위기를 연출했다.

CTS교향악단의 공연은 다음날에도 계속됐다. 18일 주시안대한민국총영사관과 시안 인민정부가 주최한 ‘2013년 중국 시안 한국우호주간행사’ 무대에도 올랐다. 교민, 기업인과 중국 정부 관계자를 대상으로 한 이날 공연에선 중국 오케스트라 연주자와 협연했다. 교향악단은 한국 가곡과 시안 민요, 드보르자크의 교향곡 등을 들려줬다.

동 단장은 “CTS교향악단은 그동안 국내외 여러 단체와 협연하고 소외 이웃에게 무료로 공연하면서 화합의 가치를 실천해왔다”며 “앞으로 클래식을 바탕으로 한 찬양으로 복음전파에 기여하고자 노력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시안·상뤄(중국)=글·사진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