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핵협상 순항… ‘美 의회 벽’ 넘을까

입력 2013-10-18 18:31

16일(현지시간) 스위스 제네바에서 이란 핵문제 해결을 위한 이틀간의 협상을 마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5개 상임이사국과 독일 등 소위 ‘P5+1’과 이란 대표단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양측은 이번 협상에서 실질적인 돌파구를 마련하지는 못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어느 때보다 고무적인 분위기가 관측됐다고 AFP통신 등 외신이 전했다.

게다가 실무 협상을 책임진 압바스 아락치 이란 외무차관과 미국 측 수석대표인 웬디 셔먼 국무부 정무차관이 한 시간여 동안 양자회담까지 가진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과 이란 대표단이 따로 협상 테이블에 앉은 것은 1979년 이란혁명 이후 사실상 처음이라는 게 워싱턴 외교가의 분석이다.

이란은 이전보다 훨씬 구체화된 ‘신뢰 구축’ 조치를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제안에는 20% 농축우라늄 생산을 중단하고, 현재 비축한 20% 농축우라늄 가운데 일부를 산화 우라늄으로 전용하는 등의 방안이 포함됐다. 아락치 외무차관은 자국 핵시설에 대한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불시 사찰을 수용하겠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이러한 ‘양보’의 대가로 이란은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국들의 대(對)이란 경제제재 조치의 조속한 해제를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따라 조만간 협상의 중심은 이란의 구체적인 핵프로그램 축소 조치와 연계된 경제제재 문제로 옮아가게 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대이란 제재의 칼자루를 쥔 미 의회의 분위기가 우호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미 국방수권법에 포함돼 2012년부터 시행되고 있는 이란에 대한 금융·경제제재 조치는 의회가 주도했다. 결국 이에 대한 해제는 상원 등 연방의회 의원들의 동의를 얻는 게 필수적이다.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는 15일 이란에 대한 강경조치를 주문하는 ‘매파’들이 의회를 장악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하원의 스티브 이스라엘(뉴욕), 상원의 봅 케이시(펜실베이니아), 로버트 메넨데즈(뉴저지) 등 거물급 민주당 의원들이 많아 백악관을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공화당의 마르코 루비오(플로리다) 상원의원도 16일 이란이 제시한 신뢰 구축 조치가 ‘인상적이지 않다’며 이란 추가 제재를 촉구하는 결의안을 발의했다.

이스라엘의 의회 로비도 상황을 복잡하게 만들 가능성이 높다. 이스라엘은 하산 로하니 대통령 취임 이후 본격화된 이란 핵프로그램 관련 유화 조치를 위장 공세라며 이란 경제제재 해제를 반대하고 있다. 민주당 내 ‘이란 매파’ 의원들이 친이스라엘 유대계 로비단체인 미국·이스라엘 공공정책위원회(AIPAC)의 지원을 받는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워싱턴=배병우 특파원 bwb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