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그오브레전드’ 광풍] 월드컵 뺨치는 ‘롤드컵’ 인기… 욕설·비방은 퇴장감
입력 2013-10-19 04:02
얼마 전 한 IT기업에 입사한 김모(26)씨는 입사하자마자 직속 선배에게 황당한 질문을 들었다. 김씨의 선배가 그에게 “롤 하느냐”고 물은 것이다. 롤이 최근에 유행하는 게임 리그오브레전드(League of Legends)라는 정도는 알았지만 회사 선배가 굳이 묻는 건 영 어색하기만 했다. 김씨의 선배는 “요즘 우리 회사에서 롤이 대세야. 같이 하면 다른 선배들과 친해지기도 쉽고 내가 가르쳐줄게 같이 하자”고 했다. 결국 대학 입학 후 해 본 게임이 ‘애니팡’이 전부였던 김씨는 결국 주홍빛의 롤 실행버튼을 눌렀다.
호기심
단순한 궁금증이었다. 대체 이 게임이 뭐라고 친구들은 물론 회사 동료들까지 모조리 다 빠져있는지 알고 싶었다. 결국 그는 고등학교 3학년 이후 7년여 만에 처음으로 PC방을 찾았다. 롤을 해보라고 유난히 재촉했던 선배가 동행했다.
아니나 다를까, 오랜만에 찾은 PC방 모니터에 대부분은 롤 화면이 번쩍이고 있었다. 지난해 7월 25일부터 지난 13일까지 63주간 PC방 점유율 1위라는 통계는 허구가 아니었다. 심지어 지난달 7일에는 44.04%로 PC방 점유율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게임시작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수많은 영웅 중 한명을 골라 상대방과 싸우고, 적진을 공격하면 그만이었다.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은 다 합쳐도 영웅당 6개에 불과해 복잡할 것도 없었다. 다만 선택할 수 있는 영웅이 100명이 넘어 누굴 골라야 할지가 고민이었다.
우선 컴퓨터와 대전하는 방식인 ‘AI 대전’을 선택했다. 회사 선배는 처음에는 이 방식으로 게임을 하는 일이 욕을 덜 먹는 일이라고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게임하는데 왜 욕을 먹는다고 할까’라고만 생각했다. 게임이 손에 익는 건 3시간이면 충분했다.
쉬운 조작방식 덕에 롤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즐기는 게임이다. 롤을 개발한 라이엇게임즈사의 최근 발표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롤에 가입한 회원은 무려 7000만명에 이른다. 게임에 접속하는 국가 수로 따지면 145개국이고, 매일 게임을 하는 회원은 1200만명이 넘는다.
모욕
컴퓨터 대신 다른 사람과 싸우는 ‘일반게임’을 선택한 게 문제였다. 그제야 선배가 왜 ‘욕을 먹는다’고 했는지 이해가 됐다. 컴퓨터를 상대로는 어느 정도 즐길 만했지만 사람과의 대전은 전혀 다른 세계였다. 오랜 기간 게임을 즐겨온 사람들과의 실력차는 상당했고, 부족한 실력 탓에 전장을 벗어날 때마다 죽음을 뜻하는 검은 화면과 마주해야 했다.
“야 이 XX아. 넌 손가락이 제대로 붙어있냐. 미친XX. XX 못하네.”
몇 차례 연속으로 전사하자 채팅창의 같은 편이 욕을 하기 시작했다. 같은 팀에 민폐를 끼치는 것 같아 “미안합니다. 아직 초보라”고 말을 써봤지만 더 험한 말이 돌아올 뿐이었다. “초짜는 롤을 하지 마. 너 같은 XX 필요 없어.”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김씨는 일단 참았다. 팀 게임의 특성상 한 명이 못하면 게임에 질 수 있다는 건 이해했지만 그렇다고 즐겁자고 하는 게임에 욕을 하는 건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김씨는 그때 멈췄어야 했다. 자신을 욕하는 같은 편에게 “넌 뭘 잘 하기에 그러느냐”고 말한 게 화근이었다. 김씨를 욕하던 사람은 김씨의 부모까지 욕을 하기 시작했다. 참다못한 김씨는 경찰에 전화를 걸었다. 경찰은 심드렁하게 이런 사건이 한두 건이 아니라고 답했다.
실제 한 경찰서 사이버수사팀 경관은 “하루에도 수차례나 롤 게임과 관련해 고소할 수 있냐는 연락이 온다”며 “모욕·명예훼손 혐의로 고소가 이렇게 많은 게임은 처음”이라고 말한다.
모욕으로 고생하는 사람은 한둘이 아니다. 학교에서는 롤을 잘 못한다는 이유로 따돌림을 당하는 일도 일어나고 있다. 고등학교 교사인 A씨는 “요즘 남학생들 사이에서는 롤을 잘하는 학생은 인기가 좋고, 잘 못하는 학생은 같이 친구들과 어울리기도 어렵다”며 “롤을 두고 서로 싸우는 일도 잦다”며 한숨을 쉬었다.
경찰에 고소하자니 절차가 너무 복잡해 다른 방법을 찾은 김씨는 게임 내에 있는 ‘배심원단 제도’를 찾았다. 욕을 하거나 게임을 훼방하는 사람에 대해 사용자들이 직접 제재를 내리는 제도다.
라이엇게임즈가 배심원 제도를 만든 이후 지난 8월까지 롤 사용자들은 무려 734만건에 대해 투표했다. 이로 인해 채팅 제한을 받은 게임은 무려 100만8020건에 달했다. 700만건이 넘는 투표가 이뤄질 정도로 수많은 사람들이 게임에서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내뱉고 있는 것이다.
된통 욕을 들을 때마다 게임을 끊어야겠다고 생각하지만 강한 중독성이 문제다. 김씨는 여전히 매일 밤마다 롤의 실행버튼을 눌러 게임 속 영웅을 불러내고 있다.
진삼열 기자 samu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