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치 선글라스 잔혹사] 눈이 부셔도 함부로 쓸 수 없다 그 느낌 아니까!

입력 2013-10-19 04:00


◐ 에피소드 1

청와대 한 관계자는 지난 8월 선글라스를 쓴 모습이 회자되면서 큰 곤욕을 치렀다. 박근혜 대통령을 수행해 해상 재난현장을 방문했을 때였다. 따가운 햇살이 수면에 반사돼 현장에서 배포된 자료문서를 읽을 수 없을 지경이었지만 대통령 옆 선글라스 착용은 금기(禁忌)였다.

◐ 에피소드 2

민주당이 국가정보원 개혁과 민주주의 회복을 외치며 장외투쟁에 돌입했던 서울광장. 곳곳에서 눈살을 찌푸리거나 손을 이마 앞으로 들어 올려 해를 가리는 야당 의원들이 눈에 띄었다. 천막당사가 세워졌다지만 초가을 한낮에 탁 트인 공간으로 쏟아지는 햇살을 피할 수는 없었다. 그들은 수시로 거리 홍보전과 각종 집회에 참석해야 했다.

‘강렬한 햇빛으로부터 눈을 보호하기 위해 쓰는 색깔 있는 안경.’

선글라스, 우리말로는 색안경의 뜻풀이다. 사전적 의미에는 포함되지 않지만 멋을 내기 위해서 쓰는 경우도 많다. 여기까지만 보면 신체를 보호하기 위한 필수 실용품이고 패션 소품일 뿐이다.

하지만 대한민국 국민에게 선글라스는 박정희 전 대통령을 상징하는 물건이기도 하다. 지난 대선 기간 박 대통령을 닮은 여성이 출산하는 듯한 그림으로 논란이 일었다. 이 그림에서 갓 태어난 아기는 선글라스를 낀 모습이었고 당연히 박 전 대통령을 의미하는 것으로 인식돼 파장이 더욱 커졌다.

박 전 대통령은 5·16 군사쿠데타를 일으키던 순간 짙은 검은색 선글라스를 쓴 모습으로 한국 현대사의 중심에 등장했다. 쿠데타 직후 박 전 대통령이 서울시청 앞에서 당시 박종규 소령, 차지철 대위 등 무장한 군인들을 뒤에 세우고 육군사관학교 생도들의 시가행진을 지켜보는 흑백사진은 격동기 현대사 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로 꼽힌다. 이후에도 박 전 대통령은 선글라스를 애용했다. 심지어 1961년 미국을 방문해 존 F 케네디 당시 대통령을 만났을 때도 예외가 아니었다.

선글라스 낀 박 전 대통령. 누구에게는 국가 경제가 초고속 성장을 했던 시기로 추억되는 반면 다른 누구에게는 민주주의와 인권이 유린된 암흑기로 다가온다. 하지만 선글라스를 통해 독재, 권력, 꿍꿍이, 카리스마 등 부정적이거나 강렬한 이미지를 연상한다는 것은 대체로 공통적이다.

독재자가 쓴 선글라스는 대중이 ‘허튼 생각’을 할 수 없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독재자의 시선을 감춰서 그의 마음속을 읽을 수 없게 하고, 상대방에게는 스스로의 행동을 의식·검열하도록 만든다. 범죄혐의자들을 취조할 때 활용되는 한쪽에서만 보이는 특수유리와 같은 원리다. 현재까지도 정보기관 요원, 경호원 등이 선글라스를 착용하는 이유와도 같다.

박 전 대통령이 서거한 지 34년이 지났고 민주화도 됐지만 그가 남긴 ‘박정희 콤플렉스’는 아직도 한국 ‘권력자’들에게 선글라스를 기피하게 만드는 셈이다. 여기에 최근까지 선글라스에 독재 이미지를 한층 덧칠한 인물들도 있다. 2011년 사망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은 시종 선글라스를 꼈던 모습으로 기억된다. 김 위원장과 동갑내기였고 공교롭게 같은 해 사망한 무아마르 카다피 전 리비아 국가원수 등 해외 사례도 많다.

이런 와중에 선글라스를 적극 애용한 ‘용감한’ 정치인도 있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경우 박 대통령과 당내 대선후보 경선을 두고 치열하게 맞붙었던 2006년 선글라스를 낀 모습으로 화제가 됐다. 이 전 대통령은 당시 “자꾸 누구(박 전 대통령) 닮았다고 이야기가 나오는데 딸이 사준 거라 어쩔 수 없이 끼는 것”이라고 말했다. 취임 이후에도 이 전 대통령의 선글라스 사랑은 이어졌다.

결과적으로 이 전 대통령의 선글라스 복장은 그의 대선 승리에도 기여한 것으로 분석됐다. 10년간 집권하지 못했던 보수층 사이에서 박 전 대통령 같은 강한 카리스마를 가진 국가지도자로 각인됐다는 평가다. 아울러 경제가 어려웠던 시기였고, 경제성장의 향수를 간직한 중도층에게까지 선글라스와 ‘경제 대통령’ 구호는 상당한 호소력을 발휘했던 것으로 해석된다.

유성열 기자 nukuv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