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전정희] 항두계놀이의 기적

입력 2013-10-18 17:38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사는 조점순 할머니는 올해 팔순이십니다. 그 세대가 그러하듯 이 고생 저 고생하며 사시다 늘그막에 여유를 즐기십니다. 그 여유는 요란한 것이 아니라 동네 아파트 담 아래 행상 할머니에게 상추 나물 등을 일부러 사는 정도입니다.

조 할머니는 지난여름을 뜨겁게 보냈습니다. 그리고 지난 6일 생애 최고의 순간을 맛보셨습니다. 자신이 참가한 ‘평남 항두계놀이’가 이날 충북 단양에서 열린 제54회 한국민속예술축제에서 대통령상을 차지했기 때문입니다. 조 할머니를 비롯한 80여명의 출연진은 수상 소식을 듣고 그야말로 눈물바다를 이뤘습니다. 주로 60대 이상의 단원이었습니다. 조 할머니는 최고령이었고요.

항두계놀이의 항두계는 두레계 이름입니다. 이 놀이는 평양 검무와 함께 평남의 대표적 민속놀이입니다. 모내고 김맬 때 품앗이하며 소리로 흥을 돋우는데 항두계놀이보존회 유지숙 명창이 이를 전승해 오고 있습니다. 뭐 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했나 보다 하고 간단히 생각되시겠지만 그들에겐 1972년 전남 사치도 ‘사치분교 농구팀’의 전국소년체전 준우승 못지않은 ‘기적’이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당시 섬 어린이들을 청와대에 초청해 서울구경을 시켜주었지요.

한국민속예술축제에서 이북5도 팀이 대통령상을 받은 건 52년 만의 일입니다. 61년 황해도 봉산탈춤이 상을 받은 이래 처음이죠. 분단 이래 이북5도 민속은 맥 잇기도 어려운 형편이어서 대회에 나가도 장려상 정도가 고작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조점순 할머니와 서도소리 명창 유지숙 같은 분들은 사재를 텁니다. 대통령상 상금 1500만원입니다. 80여명 단원 데리고 먹이고 재우고 입히고 해보십시오. 어떻게 하든 빚집니다. 또 그 상 받았다고 해서 전수자가 느는 것도 아니죠.

“우리마저 죽으면 이 귀한 것을 어떻게 하냔 말이여. 내가 살아생전 우리 가락 지키는 데 도움이 된다면 뭔 일인들 못하겠어.”(조점순)

“지금 한류의 바탕이 무엇이겠어요. 이 같은 소리와 풍습, 언어가 이어져 만들어낸 것 아니겠어요. 저는 자식보다 더 소중합니다. 무대만 설 수 있다면 빚 그것 못 내겠어요.”(유지숙)

6·25전쟁 나고 가난했던 청춘기를 소리로 풀었다는 조 할머니, 60∼70년대 “여보시오, 농군님네” 하며 소리를 하던 농군들에게 새참을 날랐다는 유 명창의 경험은 먼 기억이나 우리 몸속에 녹아 있는 유전자입니다. 이번 연습 기간 중 유 명창이 단원들 밥해 먹일 돈이 없어 쩔쩔매는 걸 보고 조 할머니가 500만원을 어렵사리 내놓았습니다. 부러 식사 전 헤어지려는 이들을 위해 찰떡도 하셨습니다. 항두계놀이 단원 가운데 이런 분들 많습니다. 자기 돈과 시간을 써가며 전통을 잇고 있는 거죠.

이북5도 민속이 이처럼 맥을 잇기 어려운 건 지역 기반이 없기 때문입니다. ‘38따라지’로 불리는 분들은 정착하기 바빠 예술에까지 신경 쓸 여유가 없었지요. 이번 공연을 위해 백남진 평남지사, 박영옥 전 평남지사, 그리고 군수 등이 십시일반해 이들을 도왔습니다. 또 거붕그룹 백용기 회장 같은 분은 2000만원을 선뜻 기부했고요. 백 회장은 국악 및 민속 발전의 대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52년 만의 대통령상 수상에 대해 우리의 관심은 언론의 ‘단신’ 수준입니다. 사치분교 어린이들처럼 ‘박 대통령’의 초청을 받는 것도 아닙니다.

그 영광의 얼굴 80명이 다음달 3일 가을놀이 갑니다. 조 할머니가 또 떡을 찔 모양입니다.

전정희 대중문화팀 선임기자 jhje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