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책 천국 ‘보수동 책방골목’] 보물 가득한 ‘지식창고’… 없는 책 빼고 다 있다

입력 2013-10-19 04:08 수정 2013-10-19 14:34


부산 중구 보수동 책방골목은 국내 거의 유일의 헌책방 밀집지역이다. 폭 2m 길이 150m 골목 양쪽으로는 유서 깊은 헌책방 50여곳이 빼곡히 들어 차 있다.

고서와 신간, 전문서적과 대중서적, 예술잡지, 통속잡지, 외국 원서와 번역본…. 이곳에는 희귀서적부터 어린이도서까지 그야말로 없는 책이 없을 정도로 다양하고 보유권수도 상상을 초월한다. 부산시민들은 이곳을 “부산의 지식창고”라고 자랑한다.

천고마비의 계절을 맞아 보수동 책방골목이 들썩이고 있다. 골목 일대에서 축제가 펼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부산 중구와 보수동 책방골목번영회 등이 주관한 보수동책방골목축제는 올해가 10회째로 18일 막이 올라 20일까지 이어진다. 축제 기간에는 1만명 이상의 책 마니아들이 찾을 전망이다.

‘책의 소리를 듣자’라는 주제로 열리고 있는 이 축제는 책방골목 상인들이 개최하는 순수 민간행사다. 번영회 양수성(41·고서점 운영) 총무는 18일 “책방골목이 가진 독특한 문화의 향기를 시민과 국내외 관광객들에게 전파하는 게 축제의 가장 큰 목적”이라고 말했다.

축제 기간 동안 골목 안 책방들은 저마다 특징을 살린 ‘1책방 1이벤트’를 선보인다. 아동도서 1000권 한정판매, 성경책 100권 한정판매, 창간호 전시회, 희귀도서 전시회 등이 그것이다. 이 기간 모든 책은 권당 500∼1000원에 판매된다.

또 헌책방 사진전과 19세기 영문 성경전, 기독교 서적전, 규방공예전, 역사 깊은 한적전(韓籍展) 등이 책방골목 4층 전시실과 우리글방 등에서 펼쳐진다. 비즈책갈피 만들기·세라믹 페인팅 등 책방골목 체험전과 게릴라 콘서트, 야외 영화 상영, 어린이 그림대회, 영작문대회 등도 준비됐다.

보수동책방골목축제 10주년 기념 다큐사진집 ‘책빛마실’(세움)도 출간됐다. 보수동 책방을 촬영한 최종규 작가의 작품 1000편이 재미있는 설명과 함께 실려 있다.

최 작가는 “책 더미의 두꺼운 먼지 속 곰팡내를 맡으며 살았던 몇 년 동안 도스토옙스키, 헤르만 헤세, 네루다, 김수영, 이청춘 등 거대한 산맥과도 같은 사람들을 책 속에서 만났다”며 “책방골목은 켜켜이 쌓아두었던 다양한 지식과 정보가 만화경처럼 펼쳐지는 곳”이라고 소개했다.

김은숙 중구청장은 “서울 대구 인천 등의 책방골목은 모두 사라졌지만 보수동 책방골목은 상인들의 노력 탓에 오히려 부활의 기미를 보이고 있다”고 강조했다.

보수동 책방골목은 6·25전쟁 피란민들의 애환이 서린 곳이다. 전쟁 직후 이 일대에는 전국에서 피란 온 많은 학교가 ‘천막교실 수업’을 했다. 때문에 학생들의 통학로였던 보수동 일대 골목은 학생들로 북적거렸다. 당시 열악한 출판 사정으로 교과서는 물론이고, 많은 지식인들이 책을 제대로 구입하기가 어려웠었다. 때문에 피란 온 학생들과 지식인들은 어려운 살림살이 속에서 가지고 온 책들을 팔고 사기도 하고 저당 잡히기도 했다.

한창 때 100여곳이 성업했던 책방골목은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현재 50여곳이 남아 있다. 하루 이용고객도 현저히 줄어 한때는 골목의 존폐마저 걱정했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국내 유일의 책방골목’이란 문화적 가치인식과 문화예술인, 책방골목 상인들에 의한 다양한 문화콘텐츠 개발로 다시 골목이 살아나고 있다. 국내 최대의 ‘도서문화거리’로 발돋움하고 있는 것이다.

책방골목마다 북카페와 커피전문점이 들어서고, 국내 유일의 책방골목을 구경하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관광객들이 줄을 선다. 청춘남녀가 북카페에 나란히 앉아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고, 아마추어 사진가들은 골목골목 ‘책이 있는 풍경’을 카메라에 담는다. ‘진흙 속 보물’을 찾듯 서가 구석구석을 뒤지며, 희귀본 탐험을 하는 학구파들도 눈에 띈다. 책방골목은 새로운 ‘부산의 문화 터’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최근 정부와 부산시, 중구청 등이 책방골목 활성화에 동참하고 나섰다. 정부는 올해 국비 7억원을 들여 책방골목에 어린이 도서관을 짓는다. 시와 구청은 아케이드와 안내간판 설치, 주차장 확충, 대중교통 증편 등을 추진하고 있다.

책방골목 60년 역사의 증인인 학우서림 주인 김여만(82)씨는 “우리나라 최고의 국어학자인 외솔 최현배 선생도 이곳을 즐겨 찾아 지식을 쌓았다”며 “책방골목은 상가가 아니라 문화유산의 보고(寶庫)”라고 강조했다.

부산=윤봉학 기자 bhyo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