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의 영성] 얼마나 순결을 원하는가

입력 2013-10-18 17:26

“순결을 사랑하는 분이 있습니까? 그런 분이 계시면 손을 들어주십시오.” 미국에서 열린 수도원 대표들의 모임에서 한 리더가 던진 말이다. 이 질문에 모든 수도원 지도자들은 손들기를 주저했다. 누가 우리에게 같은 질문을 한다면 어떻게 반응했을까?

마음이 청결한 자, 복이 있나니

수도사들의 조상인 사막교부들에게 이 같은 질문을 했다면, 아니 질문 자체가 실례가 됐을 것이다. 그들은 마음의 순결을 필히 이루고 말아야 할 인생의 목표로 삼고 있었기 때문이다. 수도사들의 마음에 각인된 좌우명은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마 5:8)라는 말씀이었다. 역사상 처음으로 공주수도원을 설립한 파코미우스는 마음이 청결하지 못한 자는 죽은 후에 영광의 하나님을 보지 못한다고 경고했다. 수도사들에게 마음의 순결은 내일의 운명을 좌우하는 절대요인이었다.

수도사들에게 마음의 순결을 가장 해치는 것, 끈질기게 오염시키는 것은 역시 성적인 생각이었다. 그들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게 만드는 파괴적인 요인들 가운데 음란과 음행이 있음을 자주 기억했다(엡 5:5; 고전 6:9∼10). 성과 관련해 마음의 순결은 어느 정도 지켜야 한다고 가르쳤을까. 원로 수도사 케레몬은 마음의 순결에 등급이 있다고 했는데, 고급 단계에 이르면 다음과 같은 특징이 차례로 나타난다고 했다. 깨어 있는 동안 정욕의 공격에 넘어가지 않으며, 성적인 생각을 즐기며 머물지 않으며, 여인을 보아도 욕망에 흔들리지 않으며 깨어 있는 동안 성적 흥분을 허락하지 않으며, 어떤 매체들이나 대화로부터 자극이 와도 동의하지 않으며 고요하고 깨끗한 마음을 유지하며, 수면 중에 여인의 매혹적인 환상에 현혹되지 않는다. 케레몬은 이렇게 완전히 깨끗한 상태에 이르면 드디어 다음 구절을 경험적으로 이해하게 된다고 말한다.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나의 오른쪽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시 16:8).

어떻게 하면 순결의 정상에 도달할 수 있을까? 원로들은 수도생활에서 매일 반복되는 기본기에 충실하라고 조언한다. 온갖 종류의 금욕경성, 금식, 철야, 노동, 독서, 끊임없는 기도, 성경묵상 그리고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와 보호하심을 구하라는 것이다.

이 기본으로 안 되면 어떻게 하는가? 가장 흔한 관습은 자기 생각을 스승에게 털어놓는 것이다. 원로 모세는 “자기 생각들을 숨기지 말고 원로들에게 털어놓아라. 다만 나이만 많은 자가 아니라 영적이고 분별력이 있는 자라야 한다”고 조언한다. 안토니는 “가장 작은 일도 스승에게 털어놓아라”고 한다. 또 푀멘은 “원수가 가장 좋아하는 일은 자기를 털어놓지 않는 것”이라고 가르친다.

한 수도사가 밤에 정욕에 시달리다 일어나 원로에게 가서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았다. 그 원로는 그를 격려해 주었다. 힘을 얻은 수사는 독방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또 더러운 생각이 그를 유혹했다. 그래서 또 원로에게 돌아갔다. 그 일을 몇 번이나 되풀이했다. 그때마다 원로는 용기를 주었다. “마귀에게 지지 말게. 흘러가는 대로 자신을 버려두지 말고 오히려 그 반대로 하게. 악한 생각이 공격할 때마다 나를 보러 오게나. 그러면 원수는 패해서 사라질거야.”

그 수도사는 그 밤에 열한 번이나 원로에게 가서 고백했다. 마음의 순결은 혼자 이루는 것이 아니었다. 제자의 순결을 유지하려는 관심과 집중된 노력, 스승의 격려와 기도가 함께 빚어내는 작품이 순결이었다. 그러나 자기 생각을 털어놓는 이 관습은 우리가 고백하기도 어렵고, 그것을 들어줄 만한 현명한 사람도 찾기 힘들다. 이를 위해 또 다른 방법이 있었다.

안토니가 고안한 ‘악한 생각 쓰기’였는데 그의 제안을 들어보자. “다음과 같이 한다면, 우리가 죄를 짓는 것을 예방할 것입니다. 우리들 각자는 서로에게 설명하듯이, 우리의 행동과 영혼의 동요를 주목하고 기록합시다. 그러면 여러분은 다음 사실을 확신하게 됩니다. 자신의 행동을 누가 알까봐 염려하며, 죄를 짓는 것뿐 아니라 악한 일을 꾀하는 것조차 멈추게 된다는 것을 말입니다.…우리가 서로에게 보고하듯이 우리의 생각을 기록한다면, 그 일이 알려지게 될까봐 부끄러워 우리는 자신을 깨끗하지 못한 생각에서 틀림없이 지키게 됩니다. 이러한 기록이 우리의 동료 수도사들의 눈을 대신하게 합시다. 그래서 보이는 것만큼 쓰면서 부끄러움을 느껴 우리가 결코 악한 일에 빨려들어가지 않도록 합시다.”(‘성 안토니의 생애’ 중에서)

마음의 순결을 원하는 열망

유혹이 끝이 없는 세상에서 우리는 마음의 순결을 요구받고 있다. 세상은 음란물에 푹 빠져 있어도 우리는 자신을 지켜야 한다. 오늘 그리스도인들이 기름부음을 상실하고 약한 것은 이 싸움에서 지기 때문이다. 사막이 입증한 방법들은 순결을 원하는 이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방법이 아니라 ‘얼마나 마음의 순결을 원하는가’, 그 열망에 달려 있다.

김진하 <백석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