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맹학교 100년사 나왔다

입력 2013-10-17 22:54

[쿠키 사회] ‘서울맹학교 100년사’ 제1·2권이 발간됐다.

이유훈 서울맹학교 교장은 17일 발간사를 통해 “지난 100년 동안 서울맹학교는 시각장애학생들의 삶을 윤택하게 하는데 초점을 둔 교육과정으로 학생들과 함께해왔다”며 “국내·외에서 27명의 박사를 비롯 이료인(理療인), 대학교수, 정치인, 교사, 성직자, 예술가, 연예인 등을 배출했다”고 감격해했다.

서울맹학교는 1913년 4월 1일 일제강점기의 어려움 속에서 16명으로 문을 열었다. 서울 서대문구 천연동98번지에서 ‘제생원 맹아부’로 출발해 광복이 된 뒤 1945년 10월 1일 ‘국립맹아학교’로 개교했다. 이어 1959년 4월 1일 재생원 맹아부로 출발한지 46년 만에 서울맹학교가 됐다. 이후 종로캠퍼스와 용산캠퍼스에 이르기까지 교세를 확장하면서 현재까지 4587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시각장애 교육의 산실인 서울맹학교의 역사는 우리나라 특수교육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기우 인천재능대 총장은 축사를 통해 “서울맹학교 출신으로서 우리나라 최초로 박사학위를 받고 미국 백악관 국가장애인위원회 정책차관보로 일하면서 장애인을 위해 헌신했던 고 강영우 박사의 사례는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고 언급했다.

서울맹학교 역사에서는 슬픔 일을 고귀한 교육사업으로 발전시킨 사례도 있다. 1980년대 초 이 학교를 다닌 정윤민씨가 졸업후 단국대를 거쳐 미국 버클리대학에 유학을 마친 뒤 서울맹학교로 돌아와 교사로 부임해 후배들을 가르치다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로 자매들과 함께 숨지면서 유족들이 그녀의 시각장애인으로서의 삶을 추모해 삼윤장학재단을 만든 것이다. 1996년 설립된 이 재단에서 지금까지 서울맹학교에 지급한 장학금의 규모는 7억6000만원이며, 수혜학생은 2000명에 달한다.

2권에서는 서울맹학교 10대사를 기록하고 있다. 제생원 맹아부의 설립, 훈맹정음 창안과 한글점자 정비, 1931년 천연동에서 신교동으로 이전, 1937년 헬렌켈러의 방문과 1949년 이승만대통령의 학교방문, 6·25전쟁과 학교피난, 1959년 맹·농의 분리와 국립맹학교, 각 교과과정 전국 최초 실시가 그것이다.

또 1966년 휴교령 발령과 학교장의 강제 퇴임, 2003년 용산 이료전공교육관 착공, 시각장애인 1호박사 강영우 동문, 시각장애인 국회의원 정화원 동문, 시각장애인 서울법대 입학생 1호 최민석 동문 등을 배출한 기록이 게재되어 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정창교 기자 jcgy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