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이러고도 ‘原電 강국’이라 할 수 있나

입력 2013-10-17 18:58 수정 2013-10-17 22:15

신고리 3·4호기 마저… 책임 분명히 묻고 대책 서둘러라

신고리 원전(原電) 3·4호기 케이블 불량 판정으로 내년도 전력수급에 비상이 걸렸다. 각각 내년 8월과 9월이 목표인 준공 일정이 1년 이상 늦춰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원전 2개를 돌리지 못할 경우 무려 280만㎾의 전력에 구멍이 생긴다.

이번 사태는 기본적으로 전력 당국과 납품업체의 비리에서 비롯된 것이다.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지난 5월 JS전선이 납품한 원전 케이블의 시험성적서 위조 사건이 불거지자 6월 신고리 3·4호기 케이블에 대한 재시험을 지시했다. 결과는 불합격이었고, 920㎞에 이르는 케이블을 전면 교체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LS그룹 계열사인 JS전선은 원전비리의 주역이나 마찬가지다. 신고리 3·4호기에 들어간 불량 케이블 말고도 신고리 1·2호기와 신월성 1·2호기에 들어간 제어케이블 시험성적서 조작에도 연루돼 있다.

이번에 JS전선은 케이블에 열 노화(aging) 처리를 하지 않고 열풍기로 표면만 살짝 그을린 ‘생 케이블’ 상태로 시험을 한 뒤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에 납품한 것으로 확인됐다. 납품 비용을 줄이기 위해 꼼수를 부린 셈이다. 전력 당국을 얼마나 만만하게 봤으면 이런 짓을 했을까.

관리감독 기관인 한수원은 그동안 뭘 하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2008년 이후 각종 비리 혐의로 해임된 한수원 직원만 45명이나 될 정도이니 조직의 기강해이가 극에 달했다고 봐야겠다. 비리 불감증에 걸린 한수원이 폐쇄적 인맥을 형성하고 있는 원전업계와 유착하다 보니 불량 납품이 잇따르는 것이다.

문제는 불량 납품의 위험성이 매우 크다는 점이다. 특히 제어케이블의 경우 원전에 사고가 났을 때 원자로를 냉각시키는 신호를 보내 사고가 더 이상 확대되지 않도록 하는 기능을 한다. 이것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을 경우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처럼 엄청난 재앙으로 번질 수도 있다.

사고는 피했다지만 신고리 3·4호기 준공 지연으로 최소 3조원 이상의 금전적 피해가 불가피하다. 케이블 교체 비용은 360억원에 불과하지만 전력수급이 원활하지 못해 한전이 LNG 등 비싼 에너지원으로 발전소를 돌리지 않으면 안 될 형국이기 때문이다. 당국의 감독 부실과 납품업체의 꼼수로 조(兆) 단위의 국가적 손실이 발생한 것이다. 정부는 JS전선에 대해 구상권을 청구하는 등 책임을 분명히 물어야 한다.

한수원이 이번 사태를 예견해 대비책을 제대로 마련하지 못한 것도 비판받아 마땅하다. 국내외 전문가들은 지난 6월 이후 납품 케이블이 재시험에 통과하지 못할 가능성이 상당히 높은 것으로 전망했다고 한다. 당국이 불합격에 대비해 외국산 케이블에 대한 성능시험을 진행해 왔다지만 충분하지는 못했다. 한수원은 지금부터라도 새로운 납품업체를 하루빨리 선정해 신고리 3·4호기가 조기에 가동될 수 있도록 특단의 노력을 기울여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