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줄 새는 나라 곳간] 응급의료비대불금은 눈먼 돈

입력 2013-10-17 18:06 수정 2013-10-17 22:11


국가 보조금은 먼저 먹는 사람이 임자

나라 곳간이 줄줄 새고 있다. ‘나랏돈은 눈먼 돈’이라는 일부 국민들의 도덕적 해이와 정부, 지방자치단체의 관리·감독 소홀이 빚어낸 합작품이다. 재정 부담으로 대통령의 복지 공약이 줄줄이 후퇴하고 있는 상황에서 재정 확보에 앞서 ‘밑 빠진 독’부터 고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관리 시스템 정비와 전달체계 개선 등 대책마련이 시급하다.

응급환자들에게 정부가 진료비를 빌려주는 응급의료비대불사업 상환율이 수년간 5%대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건강보험 직장가입자 이모씨는 급작스런 가슴 통증으로 2011년 5월 6일 경기도 분당 C대학병원 응급실로 실려 갔다. 응급 처치에 든 총 진료비는 47만3430원. 이씨는 진료비 중 건강보험으로 처리된 금액을 제외한 나머지 25만5990원(비급여 포함)을 정부의 ‘응급의료비대불제도’를 이용해 융통한 뒤 지금까지 갚지 않고 있다. 보건복지부 국감자료를 통해 이씨의 월 건강보험료 부과 내역을 살펴보니 58만7580원이었다. 이는 직장가입자의 월 소득이 1000만원 정도일 때 부과되는 금액이다.

1995년부터 시행하고 있는 응급의료비대불제는 아파서 응급실에 갔는데 낼 돈이 없을 때 응급의료비용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대신 지급해주고 나중에 환자로부터 돌려받는 제도다.

17일 복지부에 따르면 2008년부터 올 6월까지 응급의료비대불금액은 모두 130억3874만원이었지만 상환액은 연평균 5.4%(6억9845만)에 그쳤다. 문제는 미상환자 상당수가 갚을 능력이 충분한데도 고의로 버티고 있는 점이다. 올 6월 기준 미상환자 6504명 중 71%(4635명)는 소득과 재산이 있는 건강보험가입자였다. 특히 건강보험료를 월 10만원 이상(올 6월 기준) 납부하는 이들이 639명이나 됐다. 월 소득 180만원 이상인 직장가입자의 건보료가 10만6000원임을 고려할 때 최소한 이들은 빌려간 응급의료비를 갚을 능력이 있다는 뜻이다.

급할 때 빌려 쓰고 나중에는 ‘공짜’라 생각하는 고의적 미상환자들의 ‘모럴 해저드’도 지탄받을 일이지만 효율적이지 못한 징수체계가 더 큰 문제다. 민주당 최동익 의원은 “응급의료비대불금 심사와 징수를 맡은 심평원은 상환능력을 파악할 소득 등 공적자료 확보에 제한적이어서 좀처럼 징수율을 높이지 못하고 있다”며 “소득·재산 등 방대한 자료를 갖고 징수 관리를 하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이 사업을 운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복지예산 누수 사례는 이뿐만이 아니다. 민주당 김용익 의원이 보건복지정보개발원 제출 자료를 분석한 결과, 지난 3년간 보육료와 양육수당 중복지원은 3만9020건, 51억2700만원에 달했다. 현재 양육수당은 행복e음(사회복지통합관리망), 보육료는 보육정보시스템을 통해 지급되고 있다.

중복지급이 확인된 건 중 67%(2만6282건)는 어린이집에서 보육료를 결제할 때 활용하는 보육정보시스템에 행복e음상 양육수당 지급 여부를 확인하는 시스템만 갖췄어도 사전에 막을 수 있었다.

민태원 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