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이흥우] 2012년 4월, 2015년 12월 다음은
입력 2013-10-17 19:00
“정책 변경 사정 생기면 국민에게 양해 구하고 설득한 뒤 추진하는 게 당연한 순서”
1989년쯤으로 기억된다. 남북 당국회담을 취재하러 판문점에 갔었다. 회담이 진행되는 동안 남북 기자들이 한데 섞여 판문점 북측 지역 판문각 화단 턱에 걸터앉아 두런두런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을 때였다. 불쑥 북측 기자 하나가 남측 기자단의 심기를 건드리는 도발적 발언을 했다. 그가 우리에게 선전하고자 했던 대강은 20여년이 지난 지금도 또렷하다.
“우리 공화국에는 외국 군대가 주둔하지 않는다. 그런데 남조선에는 미군이 주둔하고 있다. 작전권도 미군에 있다. 그러니 남조선을 미국의 꼭두각시라고 하는 것이다.” 사실관계가 틀린 게 아니어서 대응이 옹색하던 차에 우리 측 누군가가 “북한이 적화야욕을 포기하지 않으니 주한미군이 주둔하는 거 아니냐”고 맞받았다.
한 방 먹었으니, 다음은 우리 차례. “우리는 대통령이 잘못하면 대통령 욕도 하고 그러는데 북쪽에서도 김일성 주석 욕하느냐.” 남측 기자단 입에서 ‘김일성’ 이름 석자가 나오자마자 북측 기자들은 약속이나 한 듯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사라졌다. 회담장 밖 신경전은 그렇게 남측 판정승으로 끝이 났다. 그때나 지금이나 평시작전통제권이 우리 군에 환수된 것을 제외하면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작전권 전환은 해묵은 과제다. 제한적이나마 우리 군이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을 행사한 적이 있다. 미군 휘하로 들어오라는 미국 측 요청을 거부하고 파월국군은 독자적으로 작전을 수행했다. 노태우 대통령은 작전권 환수를 공약했고, 마침내 김영삼정부 때인 1994년 12월 우리 군은 평시작전권을 되찾았다. 김영삼정부는 여기에 머물지 않고 90년대 말을 목표로 전작권 환수를 추진했다. 이때까지 전작권 환수에 이의를 제기하거나 반대하는 여론은 극소수에 지나지 않았다. 오히려 조기 전환 여론이 비등했다.
노무현정부 시절 상황은 변했다. 한·미 양국이 2007년 국방장관 회담에서 2012년 4월에 전작권을 전환하기로 합의하자 보수 진영의 반발은 거셌다. 그러다 천안함 피격 사건 등으로 한반도 위기가 고조되자 이명박정부는 2010년 전환 시기를 2015년 12월로 늦췄다. 박근혜 대통령도 후보 시절 “전작권 전환을 차질 없이 추진해 한국군 주도의 새로운 한·미 연합방위체제를 정착시키겠다”고 공언했다. 지난 4월 김관진 국방장관은 국회에서 “전작권 전환을 정상 추진 중”이라고 재확인했다. 하지만 곧 빈말이 됐다.
정부는 전작권 전환 재연기라는 중차대한 일을 비밀에 부쳤다. 국민들은 미 언론을 통해 알았다. 정부는 마지못해 미 언론 보도를 인정했다. 정부는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와 3차 핵실험으로 한반도 안보상황이 급변했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장거리 로켓 발사와 핵실험이 새로운 상황은 아니다. 이전에도 이런 불장난은 있었다. 이명박정부도 나름의 근거와 계획을 갖고 여러 상황과 조건 등을 종합 검토한 끝에 전작권 전환 시기를 정했을 것이다.
정책을 변경할 사정이 생기면 먼저 국민에게 양해를 구하고, 설득한 뒤 일을 추진하는 게 당연한 순서다. 친박(親朴) 핵심이었던 유승민 국회 국방위원장이 지난 14일 국방부 국정감사에서 “국민에게 몇 번이나 한 약속을 뒤집으면서도 사과 한마디 않는다”며 대통령과 대통령 안보실장, 국방장관을 꼭 집어 “뒤에 숨지 말라”고 비판한 것도 이런 까닭에서다.
보수성향의 JTBC가 이달 초 보도한 여론조사 결과 당장 전작권을 가져오거나 2015년에 전환해야 한다는 응답은 49.3%로 ‘늦춰야 한다’(39.8%)에 비해 10% 포인트 가까이 많았다. 국민 생각이 그렇다는 것이고 정작 작전권을 행사할 군이 자신 없다는 데야 재연기 외에 어쩔 도리가 없다. 자존심만으로 국가안보가 확립되는 게 아닌 이상 일단 군의 판단을 존중하고 싶다. 한·미 양국은 내년 전반기 결론 도출을 목표로 다음달 재연기 협상에 들어간다. 전환 시기가 또 연기되는 볼썽사나운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한 치의 빈틈없는 준비가 필요하다.
이흥우 논설위원 hw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