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우리가 외면했던 아프리카의 진실
입력 2013-10-17 17:38
아프리카 대륙의 일대기/존 리더/휴머니스트
우리에게 아프리카는 더 이상 쉽게 가볼 수 없는 ‘미지의 세계’가 아니다. 지난해 대한항공이 케냐 나이로비 직항을 개설하면서 광고했던 것처럼 인천공항에서 비행기를 타면 13시간 만에 갈 수 있는 시대가 됐다. 아프리카는 이제 TV 예능 프로그램에서조차 예능인들이 생존체험을 하는 장소가 됐을 정도로 익숙한 풍경이 됐다. 하지만 정작 우리가 아프리카에 대해 알고 있는 건 단편적 지식이나 이미지에 불과할 때가 많다.
그동안 아프리카를 소개하는 책은 양극단으로 나뉘어 있었다. 아프리카를 유럽과의 관계 속에서 바라보는, 즉 외부인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이 하나였다. 이에 대한 반동으로 아프리카 출신 학자들은 서구로부터 침탈 당한 아프리카, 수난과 약탈의 아프리카를 기술하고 있다. 하지만 이 또한 아프리카의 진면목이라고 말하기엔 한계가 있다.
1997년 발간된 이 책은 그런 면에서 탁월하다. 런던에서 태어난 저자는 18세 때 아프리카로 이주해 사진기자이자 작가로 살면서 20년간 아프리카 곳곳을 누볐다. 원주민도, 이방인도 아닌 적당한 거리에서의 담담한 관찰자로서의 시선을 내내 유지한다. 책 제목이 말해주듯, 아프리카 대륙을 하나의 인격체로 놓고 존중하며 바라보는 시선 자체가 인상적이다.
가령 저자는 ‘검은 대륙’이라는 아프리카의 대표적인 별명이 아프리카와 그 주민들을 다른 세계의 인류와 떼어놓으려는 강자적 성향의 잠재적 표현이라고 지적한다. “‘검은 대륙’은 단지 아프리카 적도의 울창한 삼림, 열대의 짙은 어둠, 아프리카인의 검은 피부, 이 대륙에 관한 지식의 총체적인 부족만을 뜻하는 게 아니다. 무엇보다도 이 별명은 아프리카가 아주 특별한 형태의 어둠, 인간의 어둠이 존재하는 곳이라는 암묵적인 낙인을 찍는다.”
동시에 그는 “아프리카가 다른 세계로부터 심하게 오해와 학대를 받았다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라며 “그보다는 인류가 아프리카에 진 채무와 의무를 인정하지 않았다고 봐야 한다”고 말한다.
유럽이 아프리카를 착취하기 전까지 아프리카인들은 행복했다는 ‘즐거운 아프리카’ 역시 잘못된 신화라고 지적하는 대목은 놀랍다. 아프리카는 그 자연환경과 기후적 영향 때문에 언제나 생존 자체가 어려운 곳이었고 충분한 노동력을 보유한 공동체가 드물어 노예제가 만연했다는 것이다. 대서양 노예무역으로 대표되는 ‘흑인 노예’에 대한 통념을 허물어뜨리는 설명이다.
책에는 이처럼 아프리카 대륙에 대해 우리가 가진 신화와 통념을 여지없이 깨뜨리는 이야기들이 넘쳐난다. 관점과 더불어 아프리카 대륙의 형성부터 초기 인류의 출현과 이후 문명사까지 유려하게 써내려가는 문체 또한 장점으로 꼽을 만하다. 저자는 흔히 아프리카 역사서에 등장하는 15∼16세기 서아프리카의 ‘송가이(Songhai)’ 제국이나 이집트 파라오 왕조를 소개하지 않는다. 아프리카를 동서남북 지역별로 나눠 분류하지도 않는다.
대신 책 초반에 등장하는 아프리카 대륙에 대한 지질학적인 설명부터 시작해 고고학, 인류학, 언어학, 생물학, 기생충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아프리카 대륙을 입체적으로 조망한다. 1500년대 이미 에티오피아는 전제적인 체계가 갖춰져 있던 그리스도교 국가였다는 사실을 비롯해 우리가 미처 몰랐던 개별 국가의 역사에는 흥미로운 대목이 많다.
저자는 아프리카 국가들이 식민지에서 독립하는 과정 등 현대사도 서술하고 있지만 1990년대까지만 기술이 돼 있는 것은 다소 아쉽다. 인권운동가이자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었던 넬슨 만델라를 통해 안정적인 독립을 성취한 남아프리카공화국과 야만적인 대학살을 거치며 실패의 길을 걸은 르완다까지 담았다.
참고 문헌과 주석을 빼고도 850여 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이다. 그래서 번역자의 말대로 아프리카 역사에 관한 상식선의 지식을 얻고자 하는 독자들에게는 적절치 않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프리카 대륙에 대해 제대로 들여다보고 싶은 독자들이라면 도전해볼 만한 책이다. 남경태 옮김.
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