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에 턱 걸리는 옥수수죽·우갈리… 빈곤의 고통을 맛봤다
입력 2013-10-16 18:07
한 숟갈 떠 입에 넣자 저절로 얼굴이 일그러졌다. 이게 도대체 무슨 맛이지?
지난 15일 아침 메뉴는 아프리카 아이들이 어렵게 구해 먹는다는 옥수수죽이었다. 말린 옥수수를 구하기 어려워 통조림 옥수수를 믹서에 갈고 찹쌀가루를 넣어 ‘옥수수죽’ 흉내를 냈다. 우유나 소금은 넣지 않았고 통조림의 달콤한 맛을 없애기 위해 한참 물에 담갔다가 요리했다.
그럴듯한 외형에 안심하고 한입 가득 물었는데 낭패감이 밀려왔다. 맵고 짠 자극적 음식에 익숙한 내 혀에 옥수수죽은 도배용 녹말풀 같았다. 입에 댄 순간부터 삼킬 때까지 밍밍하기만 했다. 그렇게 ‘아프리카 스타일’의 첫 끼니를 단 두 숟갈 만에 마치고 말았다.
세계 빈곤 퇴치의 날(17일)을 맞아 48시간 동안 아프리카 빈민국의 27세 여성으로 살아보기로 했다. 일을 안 할 순 없으니 가난한 나라에서 주로 먹는 음식을 먹으며 빈곤을 체험키로 했다. 국제구호단체 기아대책의 자문을 받아 이틀간의 식단을 짜고 요리법을 배웠다.
첫 끼니를 옥수수죽 두 숟갈로 때우고 나니 1시간여 출근길이 지옥 같았다. 당장 화장실부터 가지 못해 ‘쾌변 인생’에 금이 갔다. 불고기, 동태전, 김치찌개, 떡볶이, 칼국수, 보쌈 등 요 며칠 먹은 음식이 아른거렸다. 그래도 점심은 건너뛰기로 했다. 빈곤국 아이들에게 하루 세 끼는 불가능하다.
오후 내내 가장 괴로웠던 건 배고픔보다 배에서 나는 ‘꼬르륵’ 소리였다. 인터뷰를 하고 기사를 쓰는 내내 꼬르륵 소리는 계속됐다. 창피하고 업무 집중력도 흐트러졌다. 밥도 밥이지만 커피가 간절했다. 한 모금 마시면 금세 일을 끝낼 것 같았지만 참아야 했다.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빈곤국 아이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저녁에는 아프리카와 북한 어린이들이 먹는다는 ‘영양가루’를 먹었다. 북한과 아프리카 아이들은 ‘선물’처럼 여기는 거라며 기아대책에서 가루를 건네줬다. 원래는 대지진을 겪은 아이티의 ‘진흙쿠키’를 먹으려 했다. 진흙에 소금과 버터를 넣고 햇볕에 말려 먹는 음식. 기아대책 관계자는 “한 조각 맛보는 건 괜찮지만 몇 끼를 먹으면 장기가 망가져 안 된다”고 뜯어말렸다. 그걸 주식(主食) 삼아 먹는 이들도 있다는 생각에 머리가 복잡해졌다.
물과 가루를 1대 4 비율로 섞어 먹는 영양가루는 찹쌀, 옥수수, 말린 야채를 갈아 만든 일종의 미숫가루다. 기아대책이 준 건 구호단체의 배급용이어서 최소한의 영양분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역시 세 모금 이상 마시지 못했다. 2011년 북한 함경북도 온성군, 경원군 등지에서 영양가루를 받아들고 기뻐하던 어린이들 사진이 떠올랐다. 마음에 큰 돌덩이가 쿵 내려앉았다.
16일 오전에는 동부아프리카의 주식 ‘우갈리’를 먹기로 했다. 옥수수가루에 뜨거운 물을 부어 만든 일종의 떡이다. 마트에서 파는 옥수수가루에 녹말을 살짝 넣고 뜨거운 물을 부어 주무르니 밀가루 떡처럼 변했다. 사실 먹기 전에 겁부터 났다. 제대로 뭉쳐지지도 않아 질감부터 낯설었다. 한 입 먹으니 아니나 다를까 식어서 굳어버린 옥수수죽 같았다. 냉장고에 있는 밑반찬이 간절히 생각났다.
결국 반칙을 했다. 점심으로 텀블러(물병)에 담아온 영양가루에 우유를 한 팩 부었다. 도저히 물에 탄 영양가루를 먹을 수 없었다. ‘이렇게라도 먹어야 일할 체력을 보충한다’고 궁색한 명분도 만들었다. 우유가 들어가니 전날 아침보다는 훨씬 먹기 수월했다.
배가 고프니 이틀간 짜증이 늘었다. ‘버스가 늦는다’ ‘TV 소리가 시끄럽다’ 등의 사소한 이유로 짜증을 냈다. 잠도 잘 오지 않았다. 공복감이 피곤함보다 우선한다는 걸 이번에 깨달았다. 고작 이틀 흉내만 냈는데 몸무게가 반근(300g)이 빠졌다. 몸도 마음도 궁핍했던 48시간, 누군가에겐 일상이다.
세계 빈곤 퇴치의 날은 유엔이 가난, 질병, 굶주림에 고통 받는 이들을 위로하고 빈곤의 늪에서 벗어나게 돕자며 제정했다. 빈곤이라면 흔히 아프리카를 떠올리지만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기아대책에 따르면 국내 아동 빈곤율은 10.6%로 100만명 수준이다.
빈곤의 경제적 기준은 ‘가구소득이 전체 가구소득 중간값의 절반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조사한 우리나라 빈곤탈출률은 2007년 33.2%에서 2009년 31.3%로 하락했다. 빈곤사회연대 김윤영 사무국장은 “불안정한 노동조건, 낮은 임금, 높은 집값, 교육비 등이 가난한 사람을 만들고 빈곤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한다”며 “빈곤층 복지 확대 등 구조적 배려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유나 기자 spri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