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朴대통령 ‘상법개정안’ 왜 좌초됐나… 46개 정부기관 단 한건도 의견 안냈다

입력 2013-10-17 05:17
법무부가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공약인 ‘상법개정안’을 입법하는 과정에서 부처를 포함한 46개 정부기관이 단 한 번도 공식 의견을 제시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대통령의 대선공약이 재계의 반발로 유보되기까지 정부 부처들은 뒷짐만 지고 있었던 셈이다. 부처간 칸막이가 원활한 의사소통을 가로막았다는 지적이다.

법무부는 16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민주당 전해철 의원에게 제출한 ‘상법개정안 의견 수렴’에 관한 국정감사 답변서에서 “입법예고 직전인 지난 7월 4일부터 15일까지 기획재정부·금융위원회·산업통상자원부·공정거래위원회 등 46개 정부기관에 의견조회를 거쳤으나 입법예고 만료일 이후 현재까지 별도로 부처에서 접수된 의견은 없다”고 밝혔다. 법무부는 또 입법예고 이후인 지난 8월 부처들과 3차례 이상 간담회를 개최했으나 이 자리에서도 아무런 의견 제시가 없었다. 앞서 6월에 개최된 1차 공청회에서는 기재부 사무관 1명이 참석해 자리만 지켰고, 금융위원회·공정거래위원회 등 경제부처들은 아예 불참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법무부와 경제부처로 구성된 상법개정위원회는 회의록조차 남기지 않았다.

법무부가 지난 3월 논의를 시작해 7월초 상법개정안을 입법예고했고, 이후 재계 반발로 상법개정안이 유보되는 상황에 이르렀지만 관련 부처들은 입을 닫고 있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재계가 강력히 반발하자 지난 8월말 10대 그룹 총수들과 오찬 간담회를 열고 “신중히 검토하고 많은 의견 청취해서 추진하겠다”고 밝혔으며, 정부는 상법개정안 시행 유보, 또는 완화를 검토 중이다.

특히 정부가 입법예고 전에 이해 당사자의 의견을 듣고 사전 조율하는 통상적인 예와 달리 상법개정안의 경우 재계 의견을 수렴하지도 않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상법개정안은 경제민주화 핵심공약으로 소액주주의 독립적 사외이사 선임 시스템 도입, 집중투표제와 전자투표제의 단계적 실시, 다중대표소송 도입 등을 담고 있어 재계의 반발이 뻔히 예상되는 사안이었다.

법무부 관계자는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다른 부처에서 의견 제시를 전혀 하지 않고 있는 것은 우리로서도 알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반면 기재부 관계자는 “법무부에서 주관하고 학계에서 의견을 냈기 때문에 별도로 의견 제출을 안 했다”며 “정부 입장은 하나가 아니냐”고 반문했다.

전 의원은 “법무부는 졸속으로 의견수렴 없이 입법 예고를 했고, 관련 부처들은 제 역할을 하지 않아 사태를 악화시켰다”고 비판했다.

엄기영 김아진 기자 eo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