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수묵화에 물감을 뿌렸나… 설악산 흘림골∼주전골 단풍 트레킹
입력 2013-10-16 17:37
강원도 양양의 흘림골은 남설악 단풍명소 중 으뜸으로 꼽힌다. 한계령휴게소와 오색약수터 사이에 위치한 흘림골은 설악산 대청봉의 남쪽 골짜기이자 곰배령으로 유명한 점봉산의 북쪽 골짜기. 지난 주말부터 고운 색깔의 단풍으로 채색되기 시작한 흘림골은 만물상 등 기이한 바위봉우리들과 어우러져 화려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흘림골의 들머리는 한계령의 7부 능선에 위치한 탐방안내소. 한계령휴게소에서 양양 방면 44번 국도를 타고 2㎞ 정도 내려오면 흘림골 입구를 만난다. 흘림골은 산이 높고 계곡이 깊어 언제나 안개가 끼고 날씨가 흐린 것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20년 동안 자연휴식년제로 묶여 있다 지난 2004년에 개방됐다.
여느 단풍 명소와 달리 흘림골은 처음부터 가파른 오르막의 연속으로 1㎞ 남짓 산을 오르면 기이한 모습의 여심(女深)폭포를 만난다. 여심폭포는 생김새가 민망할 정도로 여성의 성기를 빼닮아 바라보는 관광객들의 얼굴도 단풍처럼 붉게 물든다. 옛날에는 여심폭포에서 떨어지는 물을 마시면 아들을 낳는다는 속설이 전해져 신혼부부들이 반드시 찾아야 할 코스였다고 한다.
여심폭포에서 등선대까지 이어지는 300m 길이의 산길은 워낙 가팔라 깔딱고개로 불린다. 평평한 고갯마루에 잠시 다리쉼을 한 뒤 왼쪽 길을 힘겹게 오르면 흘림골 산행의 백미로 꼽히는 등선대(登仙臺)가 나타난다. 신선이 올랐다는 해발 1004m 높이의 등선대는 기암괴석 봉우리로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남설악의 절경이 감탄사를 연발하게 한다. 오색영롱한 단풍을 색도화지 삼아 우후죽순처럼 솟아난 뾰족한 바위봉우리들의 이름은 만물상.
등선대 전망대에서 보는 남설악의 단풍은 황홀경의 극치이다. 중국 장자제(張家界)의 바위봉우리를 닮은 만물상 뾰족바위을 중심으로 색색의 물감을 흩뿌린 듯 빨간색, 주황색, 노란색, 연두색 단풍이 채색화를 연출한다. 북쪽으로는 칠형제봉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한계령휴게소 너머로 안산, 귀때기청봉, 끝청, 중청, 대청봉이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흘림골 고갯마루부터는 대부분 내리막이라 발걸음이 한결 가볍다. 하지만 내리막도 급경사 구간이 많은데다 밧줄에 의지하지 않고는 한 걸음도 떼기 어려운 난코스가 이따금 길을 가로막는다. 단풍구경 인파에 휩쓸려 단풍처럼 서서히 하산하다 보면 30m 높이에서 물보라가 쏟아지는 등선폭포가 반긴다. 등선폭포는 신선이 하늘로 오르기 전 몸을 깨끗이 씻었다는 전설이 전해져오는 폭포.
등선폭포와 무명폭포를 지나 계속 하산하면 주전골의 십이폭포가 웅장한 모습을 드러낸다. 점봉산에서 발원해 열두 폭 비단같이 굽이치는 십이폭포는 와폭이라 전체 모습을 한눈에 볼 수는 없다. 십이폭포 주변의 단풍잎은 지난 주말 초록색이었지만 하루 40∼50m씩 단풍이 하산하는 속도로 미뤄 이번 주말은 절정을 이룰 것으로 예상된다.
십이폭포에서 용소골삼거리까지 800m 남짓한 주전골 구간은 외설악의 천불동, 내설악의 가야동과 함께 설악산 단풍명소로 알려진 곳. 하얀 계곡수가 에메랄드처럼 푸른 소(沼)로 떨어지는 용소폭포의 우렁찬 소리에 놀란 단풍잎이 가늘게 떤다. 주전골은 용소폭포 입구에 있는 시루떡바위가 마치 엽전을 쌓아 놓은 것처럼 보여서 붙여진 이름. 옛날 이 계곡에서 승려를 가장한 도둑 무리가 위조 엽전을 만들었다고 해서 붙여진 지명이라고도 한다.
흘림골과 주전골 코스는 묘하게도 뒤를 돌아보게 하는 매력을 지녔다. 뾰족한 바위봉우리들은 고도를 낮춰 정면에서 보거나 옆에서 보면 전혀 다른 모습을 연출한다. 기기묘묘한 형상의 바위봉우리를 배경으로 빨갛게 물든 단풍이 불이라도 난 듯 활활 타오르는 풍경은 돌아보고 또 돌아볼 때마다 색다른 감흥을 준다.
흘림골에서 등선대와 등선폭포를 거쳐 주전골이 시작되는 십이계곡에서 오색약수터까지는 6.2㎞로 3∼4시간 거리. 그러나 인파가 몰리는 단풍철에는 훨씬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주전골 단풍도 이번 주말에 절정을 이룰 것으로 예상된다.
양양=글·사진 박강섭 관광전문기자 ks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