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만에 신작 소설집 ‘별밭공원’ 낸 송기원 “나는 상처 안에서 자유로웠다”
입력 2013-10-16 17:33 수정 2013-10-16 23:14
지워지지 않은 지상의 얼룩들 위로 바짝 허리를 세운 채 걷는 사내가 있다. 자신의 슬픔을 들키지 않겠다는 듯 빠른 보행의 속도로 보건대 그는 지상에서 가장 치명적인 색깔을 꺼내 달아나는 중이다.
시인이자 소설가 송기원(66). 그가 10년 만에 낸 신작 소설집 ‘별밭공원’(실천문학사)은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싸움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자신의 생생한 모습과 정면 대결하는 싸움이 그것. 그 대결은 자신이 터지지 않고서는 끝나지 않는 싸움일 것이다. 수록작인 ‘육식’의 한 대목. “그리고 자신의 어떤 것들이 시체와 함께 뻥, 소리를 내며 터지는 것을 분명하게 들었다. 그런 나에게는 눈앞에 펼쳐진 장면 자체가 상쾌하다 못해 아름답게까지 여겨지는 것이었다.”
인도 갠지스 강변 바라나시의 화장터에서 시체를 태울 때, 시체의 배 부분에 가스가 차오르면 터지고 마는데 그 장면을 ‘상쾌하고 아름답다’고 말하는 사람, 송기원을 16일 서울 인사동에서 만나 물었다. ‘터져버렸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냐’고. 그는 대뜸 “생각을 놓는 일”이라며 말문을 열었다. “새벽 한 두 시에 일어나 앉아있으면 그냥 앉아 있는 재미가 있어요. 아무 생각도 안 하는 것. 그냥 앉아만 있는 것. 명상이란 생각을 끊으려는 행위인데 생각은 내 것이고 몸은 가짜다, 라는 이분법의 세계가 개입을 하지요. 그래서 생각이란 아이가 재미가 없어서 못 놀더군요. 생각이란 아이들이 안 놀고 가버리는 것이죠. 예컨대 명상이란 자신의 상처와 대면하는 일인데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상처 속으로 들어가야 해요. 상처 안에 들어가 보니 비로소 자유로워지더군요.”
상처 안에서 자유로워진 자아 찾기가 이번 소설집의 주제이기도 하다. 소설의 한 대목을 인용해보자. “내 안의 어떤 공간에 대해 나름대로 의미를 깨닫게 되자 나는 토굴에서 나왔다. 그리고 다시 가정이며 사회로 돌아왔다. 그렇게 가정이며 사회로 돌아와 훌쩍 스무 해가 지났을 때, 나는 나의 어떤 공간이 사라진 것을 알았다. 나는 전혀 섭섭하거나 아쉽지 않았다. 그리고 내 안의 공간이 있던 자리에, 공간 대신에 죽음이 들어서 있는 것을 알았다.”(‘별밭공원’에서)
우리가 사는 동안 마주하는 것은 선악을 나누는 이분법의 잣대일지도 모른다. 선과 악, 안과 밖, 아름다움과 추함, 삶과 죽음이 그것. 하지만 그 둘의 뿌리는 하나인 것이다. 둘로 나뉘어지는 것이 아니라 아무런 갈등도 없이 자연스럽게 하나가 되는 세계.
우리는 송기원이 살아오는 동안 빚어낸 아름다움과 추함이 서로 마주했을 때, 무엇이 먼저 흠칫 놀라 뒷걸음을 치는지 알지 못한다. 그와 마주앉아, 많은 생각 끝에 송기원은 시인이고 소설가이고 자시고간에 그냥 인간이란 이런 물건이라고 말하고 싶었다는 사실이 이번 소설집이 아니겠는가, 싶었다.
혹한 시절인 1980년대 초, 김대중내란음모사건에 연루된 그가 감옥에서 풀려나 실천문학사 대표로 펴낸 몇 권의 책과 그 사회적 반향 때문에 그를 ‘투사’나 ‘운동가’로 보는 시각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투사’도 아니었고 스스로를 ‘투사’라 여긴 적도 없다. 송기원은 술과 여자와 책과 딸을 사랑했으나 그 자체를 목적으로 삼은 적 없었고 결코 자신의 인식욕을 충족시키기 위한 것도 아니었다. 그는 유언처럼 말했다. “상처가 내 자신이지요. 상처 속에서 난 자유로웠습니다.”
글·사진=정철훈 문학전문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