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최현수] 군사외교도 챙겨야
입력 2013-10-16 17:49
“한국군은 한국의 소중한 외교자원이지요. 인도네시아에서도 한국군과 한국방산물자들에 대한 평가는 상당히 높습니다.”
지난달 서울에서 열린 국방 관련 세미나에서 만난 한 인도네시아 관리는 한국군은 국제적인 경쟁력을 지닌 존재라고 치켜세웠다. 국방 분야에서 한국과 인도네시아의 협력관계가 좋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한국군이 국제평화유지활동(PKO)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것을 보면 그저 기자에게 듣기 좋으라고 한 말만은 아닌 것 같다.
중미의 작은 나라 아이티에 대지진이 발생한 뒤 복구작업을 위해 2010년 수도 포르토프랭스 인근 레오간에 파견됐던 한국군 ‘단비부대’는 ‘레오간의 천사’라는 칭송을 받았다. 기독교 봉사단체의 일원으로 아이티에서 활동하다 귀국한 김은진(37)씨는 “한국군은 든든한 아저씨이자 친절한 오빠 같은 인상을 줬다”며 “한국 군인들을 통해 한국을 이해하고 동경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고 전했다.
현재 유엔PKO활동을 포함해 분쟁방지와 복구작업을 위해 전 세계에 파견된 우리 군의 규모는 10월 현재 15개국 1159명에 이른다. 이들에 대한 현지반응은 대부분 상당히 긍정적이다. 높은 교육수준과 엄격한 훈련으로 다져진 뛰어난 업무능력에다 정(情)이 많고 부지런한 한국인의 심성이 독특한 친화력을 발휘해 현지주민들은 물론 함께 근무하고 있는 다른 나라 군인들에게도 좋은 인상을 심어주고 있다.
군은 전쟁 시 무력으로 국가를 지키는 일을 하지만 이처럼 평화 시에도 적잖은 임무를 수행한다. 그 가운데 하나가 다른 나라와의 대외활동을 통해 국익을 확보하는 군사외교 분야다. 군사외교의 역사는 깊다. 군인이면서 외교관 신분을 지닌 무관(武官)들은 16세기 종교전쟁에서부터 19세기 유럽의 협조체제 시기까지 국제 외교무대를 종횡무진 누비며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냉전이 종식된 뒤 안보환경의 불확실성이 높아지고 군사력만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일들이 터져 나오자 군사외교의 역할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전 세계 경찰을 자임하며 세계 곳곳에서 전쟁을 수행해온 미국도 군사력 사용뿐 아니라 군의 외교적인 역할에 눈을 돌리고 있다. 영국은 1988년 국방현안에 대해 종합적인 재검토를 한 뒤 내놓은 미래 영국의 국방전략지침서인 ‘전략방위검토(Strategic Defense Review, 1988)’에서 군사외교를 공식적인 정책목표로 채택하기도 했다.
최근 각국이 군사 전략대화를 자주 갖고, 각종 군사교류와 연합훈련이 잦아진 것도 군사외교의 중요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군사외교 활동을 통해 상호신뢰를 구축하고 오판의 여지를 줄여 갈등과 분쟁을 예방할 수 있어서다. 우리 군도 PKO활동을 보다 효과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PKO상비군체제를 구축했고 11월에는 전 세계 군 고위간부 100여명이 참석하는 ‘서울안보대화(SDD)’도 갖는다. 모두 군사외교의 일환이다. 하지만 아쉬움도 있다. 오는 2015년 문경을 비롯한 경북 7개 시·군에서 제6회 ‘세계군인체육대회’가 열리지만 관심 부족 때문인지 예산 마련부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스포츠는 ‘비정치적인 대중문화’로 국가간 유대감 개선에 유용한 수단이다. 스포츠외교의 힘은 작지 않다. 72년 미·중 간 국교수립에 탁구경기가 매개체로 활용되기도 했고 2001년 4월 미국 정찰기가 중국에 억류됐을 때 미국이 중국의 2008년 올림픽 개최를 돕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도 사태가 원만히 해결되는 데 기여했다. 2009년 아랍에미리트(UAE)가 우리나라 고등훈련기 T-50과 경합을 벌였던 이탈리아의 M-346을 선택했을 때 영향을 미친 조건 가운데 하나가 UAE 사막에 F-1 스포츠 경주대회 유치를 도와주겠다는 이탈리아의 약속이었다.
세계군인체육대회에는 110여개국에서 8700여명이 참석할 예정이다. 군사외교의 중요한 장이 될 수 있는 이 대회를 잘 활용할 방법을 고민해야 할 것 같다.
최현수 군사전문기자 hscho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