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이흥우] 전직 대통령 가옥
입력 2013-10-16 17:49
광복 후 미국 망명생활을 청산하고 환국한 이승만이 처음 머문 곳은 조선호텔 스위트룸이다. 하지만 경비(經費) 문제로 오래 머물 수 없어 돈암장으로 옮겼다. 돈암장은 700평 정원이 딸린 대저택이었다. 이곳에서도 오래 살지 못했다. 조선총독부 정무총감 다나카 다케오가 썼던 마포장으로 이사했으나 셋방살이는 마찬가지였다.
주변사람들의 도움으로 마침내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뤘는데, 이화장이다. 그가 이화장에 머문 기간은 초대 대통령에 당선돼 경무대로 옮겨가기까지 10개월과 4월혁명으로 하야한 뒤 하와이 망명길에 오를 때까지 한 달 등 채 1년이 안 되지만 정부수립의 중요한 업무가 이곳에서 이루어졌다. 이승만 거처 중 이화장이 유일하게 사적 497호로 지정된 이유다.
안국역에서 정독도서관 방향으로 고즈넉한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웅장한 솟을대문을 자랑하는 99칸 고택이 자리하고 있다. ‘윤보선가(家)’다. 1870년대에 지어진 사적 438호 ‘윤보선가’는 정치사적 가치뿐 아니라 건축사적 가치까지 지닌 몇 안 되는 곳이다. ‘서울의 봄’ 당시 윤 전 대통령과 김영삼, 김대중 양 김씨가 사랑채인 산정채에서 단일화 담판을 벌인 일화는 유명하다.
서울 서교동에 위치한 ‘최규하 대통령 가옥’이 지난 5일 일반에 공개됐다. 영구보존을 위해 서울시가 매입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유족들은 고인의 유품 500여점을 기꺼이 기증했다. 50년 넘게 사용한 선풍기와 재봉틀 등이 전시돼 있어 최 전 대통령 부부의 검소한 생활을 살펴볼 수 있다고 한다. 오는 12월에는 서울 신당동의 ‘박정희 대통령 가옥’이 선보일 예정이다. 두 가옥은 사적보다 급이 낮은 서울시 등록문화재로 지정됐다.
다음으로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전직 대통령들의 사저 가운데 공개될 가능성이 가장 큰 곳은 서울 연희동 ‘전두환 가옥’ 아닐까 싶다. 연희동 사저는 가족이 거액의 추징금 납부를 위해 국가에 헌납함에 따라 공공시설로 활용할 수 있는 조건을 갖췄다. 자녀들은 부모가 이곳에서 여생을 보낼 수 있기를 갈망하고 있지만 국민감정은 그리 호의적이지 않다. 그렇게나 엄청난 재산을 꿍쳐두고서 “돈 없다”며 버틴 괘씸죄의 응보일 게다. 현재로선 전 전 대통령 내외가 언제까지 이곳에서 살지 알 수 없다. 절차를 밟아 국고로 귀속되면 이곳을 나치의 부끄러운 역사를 알 수 있는 독일의 펠트헤른할레(Feldherrnhalle) 같은 기념관으로 만들었으면 한다.
이흥우 논설위원 hw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