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슈퍼 ‘甲’ 횡포 청산하지 못하면 선진국 안 된다

입력 2013-10-16 19:15 수정 2013-10-16 23:22

가진 사람들의 일대 반성과 개혁운동 필요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속담이 있다. 지혜와 지식이 많아질수록 겸손해진다는 의미다. 우리 사회는 어찌된 일인지 정반대다. 돈이나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자기보다 약자라고 생각되면 그 위에 군림하려 한다. 우리가 해외에서 존중받지 못하는 이유다.

우리나라에서 갑 중의 슈퍼 갑은 국회의원들이다. 요즘 국정감사는 ‘기업감사’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행정부를 감사하라고 했더니 기업인들을 불러놓고 군기반장 노릇을 하는 것은 국회의 품위를 손상시키는 모양새다 . 200여명이나 되는 기업인들이 겹치기로 상임위에 호출당하는가 하면 몇 시간씩 기다렸다가 1분도 채 답변을 못하고 국감장을 나서고 있다고 한다. 수입차 대표를 증인으로 불러 통역사까지 등장했다니 보기에 딱하다.

국정감사법상 국정감사 대상은 행정부와 공공기관이다. 행정부가 제대로 정책을 펴고 있는지 감사하고 견제하면 될 일이다. 물론 규제가 필요한지 판단하기 위해 기업인들의 증언이 필요할 수도 있다. 이 경우 서면질의서를 보낸 뒤 불충분하다면 기업 활동에 제약을 주지 않는 최소한의 범위에서 실무자를 부를 수는 있다. 그렇다고 해도 민간 기업인들을 재판정의 피고인처럼 호통치고 망신 주라는 권한은 국회의원에게 없다. 국감 때마다 의원들이 기업인이나 재벌 총수를 증인으로 채택하는 것은 딴 목적이 있는 것 아닌지 의심스럽다. 출판기념회 등에 ‘알아서 찾아오라’는 무언의 압력이 아닌가. 오죽했으면 국회 환경노동위 국정감사에 불려나온 쌍용자동차 노조위원장이 “노사 문제는 노사 자율에 맡겨 달라”며 “이제 좀 그만 불러 달라”고 했을까.

라면이 덜 익었다며 비행기 안에서 여승무원을 욕하고 잡지로 때린 ‘포스코 라면 상무’나 차를 빼달라는 호텔 직원을 폭행한 중소 제빵업체 회장, 남양유업과 아모레퍼시픽의 대리점주에 대한 횡포는 우리 사회에 독버섯처럼 번지고 있는 ‘갑을’ 문화의 단면일 뿐이다. 울산지검 수사에서 드러난 대우조선해양의 협력업체에 대한 갑질은 기가 막힌다. 이 회사 임원은 집을 수리하면서 수리비 2000만원을 협력업체에 부담하게 하고 협력업체 직원들에게 시세보다 두 배나 비싼 월세를 받았는가 하면 다른 임원은 수능을 앞둔 아들을 위한 순금 행운의 열쇠를 사달라거나 아내를 위한 ‘김연아 목걸이’를 요구했다. 대리부터 임원까지 협력업체 직원들을 ‘하인’ 부리듯 하면서 35억원의 금품을 챙겼다고 하니 칼만 안 들었지 강도가 따로 없다.

주채권은행이랍시고 돈을 빌려준 동양시멘트의 사외이사를 돌려가면서 하고 퇴직한 부행장까지 일자리를 마련해준 산업은행의 행태는 또 어떤가. 산업화에만 매달려 급성장하면서 시민의식이나 정신문화는 소홀히 한 결과다. 우리 사회의 고질인 ‘갑을’ 문화를 청산하지 않고는 선진사회 진입은 요원하다. 우리나라는 G20(주요 20개국) 회원국이자 세계 8위의 무역대국이고 세계 15위 경제대국이다. 이제는 외형에 맞게 내실을 다져야 할 때다. 사회 전반의 의식개혁 운동이 필요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