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오종석] 박정희·노무현에서 벗어나라

입력 2013-10-16 18:05


박근혜정부 첫 국정감사 이틀째인 지난 15일 오전 8시. 새누리당은 국감 초반 대책회의를 가졌다. 최경환 원내대표, 윤상현 원내수석부대표 등 핵심 의원들이 모였다.

윤 수석부대표는 “국감에서 민주당이 계속 대선공약 파기라는 주장을 반복하는데 출범한 지 겨우 8개월도 안된 정부에 조급한 정치공세”라고 비난했다. 이어 김대중·노무현정부 때 공약 파기 및 포기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노무현·김대중정부 때 낙하산 인사는 대한민국 국민이 다 알아….” 조원진 의원은 국감과 직접 관련이 없는 낙하산 인사 문제를 갑자기 꺼내들었다. 민주당에 뿌리를 둔 역대 정권이 다 그랬고, 오히려 더 심했는데 왜 문제 삼느냐는 식이었다.

30분 후인 8시30분. 민주당은 국감 방향을 논의하기 위해 24시 비상국회 운영본부 회의를 가졌다. 전병헌 원내대표, 이언주 원내대변인, 정청래 의원 등이 참여했다. 전 원내대표는 “박근혜 정권의 친일 비호가 우려 수준을 넘어서고 있다”며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A급 전범들에게 준 서훈을 문제 삼았다. 이어 “그동안 박정희 전두환 김영삼 이명박 정권 등 역대 새누리당 정부가 A급 전범, 야스쿠니 신사 참배자 등에게 준 훈장만 12개에 달하는 것이 이번 국정감사에서 밝혀졌다”고 지적했다. 여야가 국감 대책을 논의한다면서 쏟아낸 말들이 기껏 과거 정권 들먹이며 상대를 공격하는 것이었다.

과거 프레임에 갇힌 국감

세계경제와 함께 국내 경제도 좀처럼 침체국면을 벗어나지 못하면서 국민은 팍팍한 삶에서 허덕이고 있다. 그런 만큼 새 정부 들어 첫 국감에 기대를 걸고 있다. 당장 먹고사는 문제, 미래 우리 자식을 위한 대책이 나오길 희망하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정책·민생국감이 절실한 이유다.

하지만 국감은 이런 국민의 열망을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16일로 사흘째 주요 정부부처에 대한 국정감사가 이뤄졌다.

각 국감장에선 여야 간 치열한 공방전이 펼쳐졌다. 주요 이슈는 국가정보원에 이어 국방부 사이버사령부의 댓글 사건과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논란, 역사인식, 박 대통령의 대선공약 등이었다.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의 교육부 국감에서는 햇볕정책과 친북 정책이 논란의 핵심이었다. 문·이과 통합안이나 대입제도, 등록금, 학교폭력 등 정작 국민들이 듣고 싶은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통일부 국감장에선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으로 인한 여야 대치가 반복됐다.

새누리당과 민주당은 국정감사 시작 전 정책·생활밀착형 감사를 하겠다고 공언했다. 최 원내대표는 정쟁 중단 공동선언을 제안했고, 전 원내대표는 ‘조건부 수용’ 의사를 밝혔다.

논의를 국민 눈높이에 맞춰야

하지만 정작 국감 시계는 거꾸로 가고 있다. 말로만 정책·민생국감을 외칠 뿐 과거에 갇힌 여의도 정치에 휘둘리는 모습이다. 실제로 국감 현장에서는 기초연금 등 일부 현안을 빼면 대부분 과거 문제로 티격태격하고 있다. 어떤 현안이든 박정희, 노무현만 외치며 진영논리에 빠져들고 있다. 지난해 1년 동안 대선을 앞두고 대한민국은 박정희, 노무현 프레임에 빠져들었다. 선거가 끝나고 새 정부가 출범한 지 8개월에 접어들고 있지만 아직도 서해 북방한계선(NLL) 논란 등 이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국민 대부분은 이런 진영논리에 염증을 느끼고 있다. 과거보다는 현재와 미래를 보고 싶어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국감은 박근혜정부 초기 국정을 점검하고, 향후 정책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정치권은 더 이상 국민을 실망시키지 말아야 한다. 당장 박정희·노무현에서 벗어나라.

오종석 정치부장 js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