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자신을 세상에 나타내소서
입력 2013-10-16 17:19
요한복음 7장 2∼9절
사람의 마음속에 숨길 수 없는 욕망이 한 가지 있다면 그것은 ‘나를 드러내고 싶은 욕망’입니다. 음식점, 미용실, 반찬가게, 주유소 등 단골집에 왜 가게 됩니까. 싸서 갈 수도 있고, 맛이 좋아서 갈 수도 있지만 단골집에 가는 가장 큰 이유는 ‘나를 알아주는 집’이기 때문입니다. 역대 대통령들이 생가를 성역화하고 자신의 치적을 남기려는 것도 이런 욕망의 산물입니다.
예수님 주변의 사람들도 예수님을 그저 그런 평범한 욕망을 지닌 한 사람으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엉뚱한 조언을 합니다. “스스로 나타나기를 구하면서 묻혀서 일하는 사람이 없나니 이 일을 행하려 하거든 자신을 세상에 나타내소서.”(요 7:4) 하지만 이들의 권면에는 비아냥과 조롱이 느껴집니다. 다음 내용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는 그 형제들까지도 예수를 믿지 아니함이러라.”(요 7:5)
‘자신을 세상에 나타내소서’라는 말은 마치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맞닥뜨린 사탄의 시험을 떠올리게 됩니다. 사탄은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고 말했습니다.
전 세계에 흩어져 있던 수많은 유대인이 모두 예루살렘에 모이는 초막절이었습니다. 그날 한방 터뜨리면 시쳇말로 “게임 끝.” 효율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러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이 어떤 분이셨습니까. 죽은 소녀를 일으켜 세우신 후 “예수께서 이 일을 아무도 알지 못하게 하라고 그들을 많이 경계”(막 5:43)하셨고, 두 맹인을 고치신 후에는 “삼가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마 9:30)고 하셨습니다. 세상에서 인정받고, 사람들로부터 박수갈채를 받는 때는 ‘내 때’입니다. ‘주님의 때’는 아니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기독교 역사학자 찰스 베어드에게 기자들이 “일생을 역사 연구에 투자하셨는데 그 연구의 결과를 핵심적으로 요약하면 무엇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는 4가지 원리를 말했습니다.
첫 번째 원리는 하나님께서 어떤 나라나 인물을 멸하시고자 하는 때는 반드시 그 사람이나 나라가 권세욕으로 날뛰고 있는 때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자기 자랑, 자기 의지, 자기 교만에 빠질 때 망하고 맙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는 성도는 이 같은 교만한 자리에 이르기 전에 주님 앞에 무릎 꿇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사도바울은 회심 후 자신보다 먼저 사도된 자들을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가지 아니하고 아라비아로 갔습니다(갈 1:17). 바울이 그때 예루살렘으로 먼저 갔더라면 일약 스타가 됐을 것입니다. “어제까지 우리를 핍박하던 그 원수가 우리 편이 되어 나타났습니다”라고 동네방네 소문이 났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아라비아로 갔습니다. 아라비아는 사막입니다. 그는 먼저 고독과 침묵의 땅 사막으로 간 것입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자신을 세상에 나타내라는 요청을 이 말씀으로 완곡히 물리치셨습니다. “내 때가 아직 차지 못하였으니 나는 이 명절에 올라가지 아니하노라.”(요 7:8) 예수님은 때를 기다리셨습니다. 그런 예수님을 본받아야 하겠습니다.
이 시간 이렇게 기도합니다. “주님, 우리에게 지혜를 주옵소서! 나 자신을 드러내고 싶은 욕망을 잠재울 수 있는 겸허함을 주옵소서. 그러나 주님이 필요로 할 때에는 담대하게 ‘내가 여기 있나이다’라고 외치며 나설 수 있는 용기와 힘을 주옵소서.”
정연수 효성중앙감리교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