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나들 (2) 하나님 영접의 첫 단계 “유치하고 촌스러워져라”
입력 2013-10-16 17:18 수정 2013-10-16 21:06
‘일기예보’ 활동을 통해 잘 나가던 때였다. 타악기를 전공한 한 선배의 작업실에서 여대생을 만났다. 보자마자 호감을 느꼈다. 그 선배에게 소개해 달라고 부탁해 사귀기 시작했다. 그녀도 나를 좋아하는 게 분명했다. 그런데 더는 가까워지지 않았다. 만나면 만날수록 알 수 없는 어떤 벽이 우리 사이를 막고 있었다. 정말 답답했다.
이유는 내가 교회를 다니지 않아서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주변 사람들이 교회 다니지 않는 사람과 사귀지 말라고 한 것이었다. 그녀도 고민하던 터였다. 우리 집은 불교 집안이었는데, 어머니의 종교가 불교였다. 나는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생각해 왔지만 그녀를 만난 후 선택을 해야 했다. 그녀와 만날 수만 있다면 종교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그녀가 다니는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다.
그녀를 교회에서 빼내 올 작정이었지만 쉽지 않았다. 일단 교회를 잘 다니고 볼 일이었다. 나는 스스로 청년부에 등록해 활동을 시작했다.
나는 누가 봐도 연예인 같았다. 복고풍의 독특한 스타일에 머리를 길렀다. 어디를 가나 눈에 띄었다. 교인들에게 나는 이상한 사람이었다. 경계하는 눈빛이 역력했다. 그러나 ‘일기예보’라는 것을 알면 태도가 180도 달라졌다. 호감을 보이고 친절을 베풀었다. 그래서 교회도 처음에는 그런대로 다닐 만했다.
하지만 모임에 참석하면 참석할수록 이질감이 느껴졌다. 우선 용어가 낯설었다. 마귀 사탄 귀신 예언 종말 피 보혈 등이 대화 속에서 수시로 등장했다. 무섭기까지 했다. ‘이 사람들 정말 미친 것 아냐?’ 이런 생각까지 들었다. 교회 청년들은 놀기도 참 유치하게 놀았다. 한마디로 가관이었다. 중고생들이나 하는 ‘공공칠빵’ ‘삼육구’ 같은 유치한 게임을 하면서 너무 즐거워했다. 정말 한심했다. 교회청년들은 패션도 촌스럽기 짝이 없었다. 선물로 받은 성경책은 더 압권이었다.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는 신화 그 자체였다. 무협지처럼 현실성 없는 이야기였다. 그런 신화를 믿고 있다고 생각하니 교인들이 불쌍했다.
그러던 내가 완전히 바뀌었다. 역시 그녀가 계기였다. 나는 ‘비기독교인과 사귀면 안 된다’는 말에 거부감을 갖고 있었다. 소그룹 리더에게 기독교인의 남녀 교제에 대해 물었다. ‘왜 비기독교인과 사귀면 안 되느냐’고 따졌다. 난감한 표정을 짓던 그 리더는 당시 사랑의교회 상담사역자 나희수 목사님께 안내했다.
나 목사님은 그냥 이런저런 질문을 툭툭 던졌다. 남자들끼리 할 수 있는, 약간 원색적인 질문이었다. 그동안 얼마나 퇴폐적으로 살았는지 묻는 말이랄까, 내 치부를 모두 들추는 그런 질문이었다. 이전에 아무렇지도 않았던 삶이 그날은 부끄럽고 창피했다. 너무 많은 죄를 짓고 살았다고 생각했다. 눈물이 쏟아졌다. 후회의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나 목사님은 한참을 기다린 후 고린도후서 5장 17절 말씀을 읽어줬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나 목사는 “거듭났기 때문에 조금 전 부끄러워했던 죄들은 모두 용서받았다. 이제 깨끗한 피조물로 새로워졌다”고 말했다. 그 말이 매우 기뻐서 또 한참을 울었다.
그때 이후 나는 유치해졌다. 촌스러워졌다. ‘신화’에 빠져들었다. 교회 청년들과 어울려 유치한 놀이를 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촌스럽게만 보이던 교회 청년들이 세련돼 보였다. 성경을 읽을 때마다 눈물을 흘렸다. 너무 부족하고 부족한 나 자신을 발견했다.
정리=전병선 기자 junb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