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구둣방들, 다 어디로 갔을까
입력 2013-10-15 18:14 수정 2013-10-15 22:47
15일 오전 11시 서울 역삼동 테헤란로 근처 한 평(3.3㎡) 남짓한 구두수선대(구둣방)엔 주인 손모(45)씨가 홀로 앉아 있었다. 가끔 길을 묻는 행인만 드나들 뿐 오전 7시부터 4시간 동안 손님이 한 명도 없었다고 했다. 하릴없이 LA다저스 류현진 등판경기만 보던 손씨는 “손님이 너무 없다”며 검은 구두약만 만지작거렸다.
손씨는 30년 경력의 ‘구두 수선 전문가’다. 10세 때 사고로 부모를 여의고 4남매의 장남으로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그는 1983년 서울 봉천동에서 구두 닦는 기술을 배웠다. 10여년간 동네 아저씨의 구둣방에서 먹고 자며 굽을 갈고 ‘물광’을 냈다. 손씨는 “구두약과 헝겊 하나만 챙겨 거리에 나가면 손님이 줄을 섰다”고 회상했다.
20여년 전 독립해 서울 강남에 자리를 잡고 한동안은 호황이었다. 기업 사옥이 줄줄이 들어서면서 회사원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손씨는 “하루에 100켤레 넘게 닦다 보니 구두약이 금세 동나는 것이 유일한 걱정이었다”고 말했다.
서울 삼성동 김성대(55)씨의 구둣방도 한때는 잘나갔다. 15년 전 김씨는 밀려드는 구두를 점심도 굶어가며 닦았다. 어릴 때부터 손재주가 남달랐던 그는 “내가 광 내준 신발을 신고 만족한 표정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을 보는 게 낙이었다”고 했다.
그러나 약 5년 전부터 손씨와 김씨의 구둣방에 손님이 끊기기 시작했다. 고가의 명품 구두가 인기를 끌면서부터다. 명품업체 등 자체적으로 애프터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이 많아지면서 수선 손님이 눈에 띄게 줄었다. 취업 후 명품 구두 2켤레를 장만했다는 직장인 유모(27·여)씨는 “애프터서비스 신청이 밀려 있어 시간이 오래 걸려도 업체에 맡기는 게 안심된다”고 했다.
달라진 패션 트렌드도 ‘구두장이’의 손놀림을 줄어들게 했다. 따로 광 낼 필요가 없는 단화가 유행하고 최근엔 정장에 운동화를 신는 젊은 직장인도 크게 늘었다. 주 5일제가 정착되면서 대기업을 중심으로 간편한 복장을 입는 ‘캐주얼 데이’가 확산된 것도 타격이었다.
경기침체 탓에 가격도 수년째 동결됐다. 통상 구두를 닦으면 3000원, 구두 밑창을 갈면 재료에 따라 5000∼8000원을 받는다. 지난 5년간 계속 같은 가격이다. 손씨는 “그래도 비싸다는 손님이 많다”고 볼멘소리를 했다.
이렇다 보니 구둣방 수입도 점차 줄고 있다. 서울 상계동에서 20년째 구둣방을 운영하는 이모(66)씨가 한 달에 버는 돈은 100여만원. 5년 전에 비해 수입이 반 토막 났다. 일이 없다 보니 읽은 신문을 읽고 또 읽는 게 이씨의 일과다. 그는 “불황에 1만∼2만원짜리 중국산 저가 신발을 신는 사람이 늘면서 3000원씩 주고 구두 닦으려는 사람이 없다”고 했다.
결국 문 닫는 구둣방이 속출하고 있다. 서울시에 따르면 2007년 1581개이던 서울 시내 구둣방은 올해 1190개로 6년 만에 400여개나 감소했다. 매년 60여개씩 문을 닫는 셈이다. 손씨는 “구두닦이에 나서는 젊은이가 없어 나이 많은 선배들만 남았다”며 “최근 주인이 세상을 떠나 문을 닫은 구둣방도 3곳이나 된다”고 말했다.
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