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법·벌금·적자… 악재에도 건재 ‘불사조 다이먼’

입력 2013-10-15 17:42


미국 최대 은행 JP모건체이스의 ‘스타 최고경영자(CEO)’ 제이미 다이먼(사진)에게 올해는 힘든 시기이다. 연방 금융감독기구와 사법 당국의 잇따른 조사와 천문학적인 벌금 등 ‘악재’로 JP모건은 여러 차례 미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징후를 일찍 알아차리고 손해를 입지 않은 채 오히려 자산을 크게 늘려 ‘월가의 현자(賢者)’ ‘금융위기 최후의 승자’로 불려온 그에게는 격세지감이다.

우선 이 은행은 2005∼2006년 투자자들에게 위험을 충분히 알리지 않고 모기지(주택담보증권) 부실 판매를 한 혐의로 미 법무부와 뉴욕주 검찰 당국의 조사를 받고 있다. JP모건은 검찰의 기소를 피하는 대신 110억 달러(약 12조원)를 합의금으로 내는 방안을 조사 당국과 논의 중이다. 8월에는 JP모건이 중국에서 사업을 하면서 중국 국영기업 고위층 자제 등을 채용해 일감을 수주했다는 의혹을 미 당국이 조사 중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이달 초에는 ‘런던 고래’ 사건과 관련해 잘못을 시인하고 미국과 영국 금융감독 당국에 9억2000만 달러(약 1조원)의 벌금을 내기로 했다. ‘런던 고래’ 사건이란 JP모건 런던지사의 투자담당 직원이 지난해 초 파생상품 거래를 잘못해 62억 달러의 손실을 냈고 이를 은폐하기 위해 고의로 장부를 조작한 사건이다. 2012년 이 은행 경영보고서에 따르면 이 밖에 캘리포니아주 에너지시장 조작, 매도프 다단계 금융사기사건 연루 등 최소 19가지 혐의로 금융 당국의 조사를 받고 있다.

결국 11일(현지시간) 발표된 3분기(4∼6월) 경영실적에서 JP모건은 3억8000만 달러(주당 17센트)의 순손실을 기록했다고 보고했다. 2004년 이후 첫 분기 손실이다. 은행 측은 손실의 최대 이유로 런던 고래 사건과 관련한 9억2000만 달러의 벌금이 반영된 때문이라고 밝혔다.

문제는 앞으로도 금융 당국 및 사법 당국 조사에 따른 벌금과 소송 등 법률비용으로 엄청난 자금이 소요될 것이라는 점이다. 은행은 230억 달러를 이러한 비용으로 계상해 놓았지만 이 정도로 충분하지 않다는 비관론이 나오고 있다.

이런 가운데서도 은행 내 다이먼 CEO의 입지가 좁아지기는커녕 경영권이 더욱 강화되는 쪽으로 흐르고 있다. 지난 5월 주주총회에서 회장과 은행 CEO 겸직 방어에 성공했을 뿐 아니라 3분기 순손실을 냈지만 이상기류는 보이지 않는다는 게 뉴욕타임스 등의 분석이다. 2008년 금융위기를 거치며 이사회에 대한 다이먼의 장악력이 크게 강화된 것도 한 원인으로 꼽힌다.

이에 따라 연쇄적인 탈·불법 행위에도 회사에 벌금만 물릴 뿐 경영진에게 아무런 책임을 지우지 못하는 금융 제재의 적절성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대표적으로 미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지난달 런던 고래 사건과 관련, 위증 혐의가 포착된 간부 등이 있었음에도 회사에 엄청난 벌금만 부과했을 뿐 고위 경영진 아무도 제재하지 않고 조사를 종결했다.

퓰리처상을 수상한 LA타임스의 마이클 힐직 경제 전문 칼럼니스트는 12일 ‘왜 아직도 다이먼이 JP모건 회장이어야 하나’라는 칼럼에서 “문제의 핵심은 금융 등 화이트칼라 범죄의 경우 금융 당국이 경영진 책임 추궁보다 회사에 벌금을 물리는 규제를 선호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회사에 물리는 벌금은 결국 소비자나 회사의 주인인 주주가 지게 된다”며 “금융 당국의 JP모건에 대한 규제는 모든 기업 경영자들에게 기업 불·탈법 행위에 따른 비용은 기업의 부담으로 넘기면 된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고 비판했다.

워싱턴=배병우 특파원 bwb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