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글속 세상] 마을이 아이들 키우고… 아이들은 다시 마을을 이루고…

입력 2013-10-15 17:35


도시는 층간소음이나 주차 문제로 이웃 사이 칼부림까지 일어나는 곳이다. 삭막한 도심 공간에서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을 실천하며 살기란 과연 어려운 것일까?

서울시 성산동에 위치한 성미산 마을 공동체가 그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이곳은 20년 전 공동육아 어린이집에서 출발, 아이들이 성장해가면서 마을로 발전한 공동체다. 어린이집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진학할 무렵인 2004년, 초·중·고 통합 12년제의 대안학교 설립으로까지 이어졌다. ‘스스로 서서 서로를 살리는 사람’을 교육이념으로 설립된 성미산 학교는 정원의 10%가 장애 학생인 통합학교로 운영되고 있다.

학생들 가정 중 마음이 맞은 9가구가 공동 주거공간을 만들자고 의기투합해 2008년부터는 ‘소행주(소통이 있어서 행복한 주택)’ 공동주택도 만들어졌다. 현재 3호까지 건설됐고 곧 4호 주택이 들어설 예정이다. 소행주에 입주한 아이들과 부모들은 저녁시간이 되면 삼삼오오 2층 ‘씨실(입주자들이 1평씩 기부해 만든 공동 공간)’에 모여 식사를 함께하며 이야기꽃을 피운다.

공동체에서 애칭인 ‘야호’로 불리는 박종숙(40)씨는 “대부분의 소행주 가정에 어린아이들이 있어 조금 시끄럽고 쿵쾅거려도 잘 이해하며 지낸다”며 “주차도 입주민들이 서로 생활패턴을 잘 알고 있어 이웃을 배려하며 차를 댄다”고 강조한다.

현재 4곳의 공동육아 어린이집과 학교를 갖춘 성미산 공동체는 한 걸음 더 나아가 학부모와 교사들이 주축이 된 ‘마을기업’도 추진 중이다. 단순히 마을을 가꾸는 데 그치지 않고 주민 주도형 마을기업을 통해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있는 것. 폐업 직전의 아이스크림 가게를 공동체 구성원들이 우여곡절 끝에 공동출자해 인수한 다음 새 단장한 ‘작은 나무 카페’가 그 시작이었다. 장애인 학부모들이 주축이 된 성미산 좋은날 협동조합의 더치커피 공방과 유기농 먹거리를 취급하는 동네부엌과 성미산 밥상, 아이들의 먹거리와 생필품을 책임지는 두레 생협, 성미산 마을극장 등도 성업 중이다. 이밖에도 40∼50개의 커뮤니티가 형성돼 마을주민들 사이의 소통을 책임지고 있다.

별명이 ‘르니’인 김우(43)씨는 “마을 공동체에 살면서 서로에 대한 믿음이 커졌다”며 “마을 사업이 이익을 내면 모두가 행복해지고 손해가 나도 기꺼이 서로 나누게 된다”고 설명했다.

수년을 살아도 옆집에 누가 사는지조차 모르는 삭막한 도심 속에서 성미산 마을 공동체는 마을이 아이들을 키우고 이 아이들이 다시 마을을 이루는 공존과 소통의 회복을 보여주고 있다.

사진·글=이병주 기자 ds5ecc@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