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경호] 꽃보다 할배
입력 2013-10-15 18:21
케이블방송 tvN이 방영한 ‘꽃보다 할배’가 세간의 화제다. 지인을 만나도, 모임에 가도 여기저기 꽃할배 이야기다. 할배와 짐꾼은 누가 좋을지 너스레 떨다 보면 한바탕 웃음판이다. 이순재 신구 박근형 백일섭 등 명배우 겸 탤런트 4명의 유럽·대만 여행기가 사람들 마음을 파고들었나 보다. 마흔 두 살의 노총각 이서진이 쩔쩔매는 모습도 웃음을 준다. 40대 웬만한 가장 나이라고 생각하니 안쓰럽게도 비쳐진다. 팔순 앞둔 대선배 앞이니 누군들 그렇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런데 이 프로그램이 왜 이리 회자될까. 시청자들이 자신의 현재, 미래의 모습을 머릿속에 그려보며 감정이입하는 탓이 아닐까. 주인공 할배들은 옛추억을 떠올리다 이내 낯선 땅에서 영어 독일어를 구사하며 종횡무진한다. 강행군일 텐데 그리 지쳐 보이지도 않는다. 보는 이들의 한마디. ‘나도 저 나이에 저럴 수 있을까’
누구나 ‘꽃보다 할배’가 될 수는 있다. 하지만 몇 가지 전제가 있다. 우선 나이 들면 약간의 경제적 여유가 있어야 한다. 물론 함께 여행갈 동반자, 우환 없는 편안한 가정, 육체적 건강도 빼놓을 수 없다. 이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빠지면 꽃할배 배낭여행은 그리 쉽지만은 않을 것 같다.
요즘 기초연금 논란이 거세다. 노·장·청 세대갈등으로까지 확산되는 양상이다. 가족 부양하며 허리 휘도록 일하느라 노후준비도 제대로 못했는데 정치권은 연금 지급방식을 놓고 티격태격이다. 65살 노인들이 꽤 섭섭할 법도 하다. 반면 20∼40대는 영 다르다. 어른 모시고픈 마음이야 굴뚝같지만 혼자 벌어먹기도 힘든 요즘 세상 너무 힘에 부친다고 항변한다. 빠듯한 여행경비로 고민하는 짐꾼 이서진이 그들의 모습은 아닐까. 요즘 어딜 가나 돈이 문제다.
얼마 전 발표된 노인 진료비 통계가 우울하게 한다. 65세 이상 노인 연간 진료비가 지난해 16조원을 넘어섰다. 노인 1인당 연평균 300만원이 넘는 셈이다. 박근혜 대통령 공약대로 노인 모두에게 20만원을 준다 한들 병원에 몽땅 바쳐야 할 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꽃보다 할배’를 포기할 수 없지 않은가. 그러니 배우 같은 전문직은 아니더라도 좀 잘할 수 있는, 나만의 일을 찾으라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우환 없도록 가정도 자상히 돌보아야 한다. 여태껏 무심했다면 선·후배, 친구도 챙겨 보자. 뭐니 해도 건강이 제일이니 시간 날 때마다 주변 공원이라도 걸어보자. 기초연금이라도 쌓이면 언젠가 우리도 꽃할배 될 날이 오지 않을까.
김경호 논설위원 kyungh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