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김종걸] 경제정책의 방향과 논리
입력 2013-10-15 18:21
성장과 평등은 논쟁이 적지 않은 주제다. 한쪽은 복지 억제, 규제 완화와 법인세 감세를 말한다. 초래된 불평등은 임시적이며 국민경제 발전에 불가피한 과정이라고 본다. 다른 쪽은 복지 증대와 부자 증세를 말한다. 복지를 통한 내수확대와 이와 관련된 산업이 중요한 성장동력이라고 설명한다.
남유럽의 재정위기, 영국 경제의 부활을 거론하면 전자에 가깝다. 미국의 뉴딜정책, 북유럽국의 성공을 말하면 복지 주도형 성장을 지지한 것이다. 양쪽 다 학적 논거와 역사적 사례는 충분하다. 이념의 렌즈를 걷어내고 본다면 평가의 잣대는 방향 설정 그 자체에 있지 않다. 그보다는 방향 설정에 따른 정책 수단의 논리성과 치밀함으로 판단해야 한다.
이 모든 정책을 비교할 수 있는 곳은 아마도 최근의 일본일 것이다. 2009년 8월 발족한 하토야마 민주당 정부는 이전의 자민당 정부와는 전혀 다른 형태의 정책을 추진했다. 노동규제를 강화하려 했으며 아동수당, 출산보조금, 고속도로 무료화 등 복지를 확충하려 했다. 정부지출의 낭비를 줄이려는 철저한 검증도 실시했고, 시민사회와의 협치를 통한 복지체계의 정비에도 적극적이었다. 잘만 하면 1600조엔 달하는 고령층을 중심으로 한 개인금융자산이 소비로 연결될 수 있었다. 이들의 자산이 유효수요를 통해 성장과 연결되는 것이다.
그러나 성공적이지 않았다. 가장 큰 문제는 정권의 안정성과 관련된 것이었다. 하토야마-간-노다로 이어지는 잦은 총리 교체는 국민의 심리적 안정감을 저해했다. 100살까지 살지도 모르는 불안감으로 저축을 거듭하는 고령화된 일본에서 미래에 대한 안심감을 제공하는 것은 유효수요 진작의 최대 정책수단으로 작용한다. 하지만 실패했다. 복지정책의 지속성에도 의구심이 있었으며 국가예산의 20%에 달하는 추가재정지출 조달계획 또한 설득적이지 않았다. 여기에 2011년 3월 동일본대지진 이후 혼란상황은 일본경제를 더욱 축소균형의 세계로 달려가게 했다.
작년 12월 재집권한 자민당의 아베 총리는 민주당 정부와는 정반대의 정책카드를 던졌다. 중앙은행 독립성의 약화를 주장할 정도로 정책의지도 단호하다. 재정정책, 금융정책, 성장전략 등 3개의 화살로 일컬어지는 아베노믹스의 모든 초점은 기업의 경쟁력 강화에 있다. 올해 초 5조6000억엔의 대형 추가 재정투입을 결정했으며 이 추세를 당분간 지속하겠다고 언명했다. 물가상승률 2%를 목표로 무제한적 금융완화도 결정했다. 엔저, 법인세 감세,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정식참여 등 기업에게는 아주 유리한 환경을 조성해 갔다. 각종 경제지표도 양호하며 총리 지지율 또한 근래 없는 고공행진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참 위험하고 불평등한 정책이다. 정부부채 비율이 240%에 육박하며 더구나 경상수지 적자기조가 예측되는 일본에서 과도한 국채 발행은 폭탄을 안고 사는 것과 같다. 지금까지의 안정적 국채 보유자가 언제 투기적 투매자로 돌변할지 모른다. 관건은 중장기 성장전략이나 이것도 별반 새롭지 않다. 차갑게 이야기한다면 그 정도는 과거 민주당 정부에서도 구상했던 것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모든 부담은 경제적 약자에게 집중되고 있다. 소비세율 인상, 복지억제, 연금생활자의 실질소득 하락은 이미 불평등한 일본을 더욱 불평등하게 만들어 간다. 염려가 되는지 아베 총리 또한 기업의 수익성 증대를 임금인상분으로 연결되도록 ‘설득’하겠다고 다짐한다. 그러나 설득되지 않는다고 특별히 강제할 수 있는 수단 또한 마땅치 않다.
한가하게 옆의 나라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그나마 그들의 정책은 방향과 논리가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의 정책은 영 보이지 않는다. 경제민주화 논의도 어느 순간 없어져 버렸다. 창조경제는 개념을 이해하기도 전에 언론에서 사라졌다. 맞춤형 복지, 복지전달체계 효율화를 위한 작업도 오리무중이다. 오로지 기초연금 이슈만이 부각된다. 경제정책의 방향과 논리가 보이지 않으니 평가할 방법도 없다. 아쉽지만 이게 지금의 대한민국의 모습이다.
김종걸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교수